▒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2-07-26 10:54
제 목
귀가 막힌 것과 기가 막힌 것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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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기가 막힌다는 말은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를 가리킨다. 필자의 한의원에서 일년 여를 귀가 막힌(이관 폐쇄증) 병을 치료한 환자가 최근 기가 막히는 일을 당했다. 이관 폐쇄증이 시작된 원인은 이렇다. 은행원이었는데 금융위기 때 미국 출장을 오가면서 무리를 하고 난 뒤 비행기에서 내리자 갑자기 귀가 막히고 팽창한 느낌이 있어 병원을 전전하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꾸준한 치료로 폭발적인 이명과 귀막힌 느낌의 이관 폐쇄증은 완화되었는데 잦은 병가로 정리 해고를 당한 것이다.

고막은 귀 내·외부의 공기압 균형 이룰 때 가장 잘 진동

귀가 막힌다는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먼저 현대의학은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귀가 막힌다는 느낌은 이관의 개폐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인데 이관은 귀와 코 사이에 연결된 통기관으로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식을 삼키면 관이 열려 공기가 교류하면서 귀 내부의 공기압과 외부의 공기압이 같아지게 된다. 고막은 귀 내부와 외부의 공기압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잘 진동하여 음을 알아듣기가 쉽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관이 열리고 닫히면서 귀 내부와 공기압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이관의 개폐에 문제가 생겨 닫혀 있거나 계속 열려 있는 경우가 있다. 계속 닫혀 이관이 막혀버리는 것을 이관 협착증, 계속 열려 있는 것을 이관 개방증이라 한다.

이관 협착증의 원인은 코와 목에 염증이 있어서 이관의 개폐가 원활하지 않아 닫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외계보다 귀 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고막이 안쪽으로 당겨져 고막의 진동이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고막은 음의 미묘한 진동을 포착하기 힘들어져 저음역의 저음성 난청을 일으킨다고 한다. 낮은음이 잘 들리지 않거나 ‘붕, 웽’ 하는 저음성 이명이 나고, 귀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자신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서 들리고 귀를 찌르는 듯한 증상도 있다.

반면 이관 개방증은 이관이 계속 열려서 고막이 과잉으로 진동되어 난청과 이명, 자신과 타인의 음성이 울리는 증세가 나타난다. 또 자기의 호흡음과 고막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관 개방증은 선천적으로 이관이 열리거나 고막이 엷은 사람에게 많은 병이지만 거식증과 무리한 다이어트로 이관 주위의 지방이 얇아지면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견해다.

스트레스 이후 귀 불쾌해지는 증상 호소

한의학에서는 이런 기계적 해석이 아니라 전통적 기(氣)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황제내경에서는 “소양경인 담(膽)이 열을 받으면 귀가 통증이 생긴다”라고 하여 스트레스를 강력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 점은 우리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난 뒤에 귀가 먹먹하면서 막히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실제적으로도 본원에 내원한 100명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명 정도가 스트레스 이후 귀가 불쾌해졌으며 이 중에 8명이 이폐색감을 호소하며 내원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귀가 막히는 것을 이렇게 풀이한다. “오장의 기가 궐역하여 귀로 들어가 귀가 꽉 막혀(    塞) 들리지 않는데 이때는 어지러움증이 동반한다.” 궐역에서 궐은 끝으로,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었고 역은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한 반전을 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지난번에 언급한 부신과 관계있다. 부신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만들어 소비하는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이다. 이런 부신마저 기능이 떨어지면 억지로 에너지를 만드는 상태가 되어 열이 올라오게 된다. 이것을 허열이라고 하며, 음허열로 해석한다.

신장 기능 정상일 때 귀가 차갑게 응축돼 소리 명징

이런 상태를 동의보감은 이렇게 설명한다. “귀가 궐역되었을 때의 증상은 귀 안에 기가 가득차고 열이 몰려 귀 안이 훈훈하거나 화끈거리기도 한다.” 한의학에서 귀는 신장과 관계가 깊다고 본다. 신장이 사계절 중 겨울을 상징하듯이 귀도 만져보면 차다(이 점은 손을 불에 데었을 때 귀바퀴를 만져 냉각시키는 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장의 기능이 정상일 때는 귀가 차갑게 응축되어 소리가 명징하지만 신장 기능이 허약하여 신장의 일부인 부신이 가동하면 열과 바람(風)이 생긴다. 이 때 귀는 풍선에 바람을 넣은 상태처럼 내부가 답답해지면서 막히고 귀 주변까지 먹먹한 느낌으로 불쾌해진다. 부신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장기간으로 진행되면 부신은 지치게 되고 고갈된다. 이렇게 부신이 고갈되면 이전에는 전혀 무리라고 여기지도 않은 사소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 점을 생각하면 귀가 막히는 일이 기막힌 일과 다르지 않음을 한의학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상곤 원장
서울시 갑산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