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 면허를 받은 초보 한의사들의 진로는 대부분 개원이나 취업이지만 일반적인 진로 외에 정부기관에 들어가 국내 한의의료 또는 보건의료제도 관련 정책 입안에 참여하거나 국제무대에서 보건 위생 분야의 발전을 위한 일에 참여할 수도 있다. 지난 19일 대한여한의사회가 개최한 진로멘토링에 참여한 이수연 보건복지부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사무관과 박유리 WHO 라오스 사무소 팀장의 발제를 토대로, 공직 및 국제보건기구 등 한의원 밖 국내외 정책 분야로 진로를 개척한 이들의 준비 과정 및 업무에 대해 정리해 봤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유리 한의사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원광대 한의과 졸업,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수료, 경희대 한의과 연구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후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전통의학 파견관을 거쳐 현재 라오스사무소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박 팀장은 “어릴 때부터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았다”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의 책을 많이 읽었고 대학은 점수 맞춰 진학했는데 당시 동기들보다 강점이 발견 안 돼 고민 끝에 한의대에 다시 입학했다”고 소개했다.
한의대 재학당시 “우연히 동기로부터 UN기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세계무대에 진출하고 싶다는 이전의 막연한 꿈이 되살아났다”며 “이후 존스홉킨스대에서 보건학을 공부하면 WHO에 들어가기 쉽다는 얘기를 듣고 유학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용과 언어 문제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야말로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고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 자체가 없는 토종 한국인이었다”며 “당장 강남 학원에 등록해 GRE 시험을 준비했고 대학원 조교를 병행해 모은 얼마되지 않는 학비로 무작정 갔다”고 밝혔다.
보건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의학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의약이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환자들이 느끼는 주관적 표현 외에 객관적인 표현방법이 있을 것 같았고 그 방법이 바로 보건학이라는 언어였다”며 “한마디로 한의학의 효과를 규명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보건학 석사를 마친 뒤 한국에 와서 경희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정부 차원의 한의학 세계화 추진이 활발해지던 차, 2016년 3월 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WHO 서태평양지부 전통의학 파견관으로 가게 됐고, 2019년 11월에 정규직 지원 기회가 생겨 12월 라오스 국가사무소 보건의료 전문가로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무에 대해서는 “주로 보건의료 체계 전반 및 보건의료인력 정책, 의약품 정책, 정보 시스템 등을 설계하는 역할이지만 현재는 코로나19 대응이 주 업무”라며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을 강화시키는 의료시스템의 핵심적 조언, 정책개발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영어 공부와 관련해서는 “국제기구에서 요구하는 영어는 유창하지 않아도 전문 분야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며 “영어 구사 능력 자체보다는 학문적 배경과 업무 경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UN 시험 기출 문제를 참고하면 국제기구가 어떤 역량을 필요하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한의사 후배들에 대한 조언으로 “한의사가 여러 이유로 보건의료인의 일원으로서 동등히 대접받지 못하는데다 여성으로서 육아와의 병행 때문에 사회에서 성장해 나가는 게 특히 어려웠던 것 같다”며 “너무 힘들고 좁아 일어나기 힘들어 막연한 불씨가 꺼질 것 같았을 때도 꿈을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해나가다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