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곤 대한한의사협회장의 기조연설입니다.
Ⅰ. 전통의학의 역사와 그 가치
각국의 전통의학은 그 지역의 기후 및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그 나라의 역사와 그 민족의 정서와 함께 발전해왔으며, 일종의 문화적인 측면도 강하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 탄생한 지 수십만 년이 지난 오늘날, 눈부신 문명과 과학의 발달이 있어왔고,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연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변화가 있었어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원시시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먹는 것은 자연물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 화학 조미료, 인공 감미료 등이 인체에 이롭지 못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인체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약에 대해서도 화학합성제보다 자연물로 처방된 약이 인체에 더욱 안전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 호르몬, 다이옥신을 비롯한 각종 공해물질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자연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고, 따라서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약은 독성과 부작용이 적은 자연물일 수밖에 없으므로 전통의학의 가치는 날로 커지게 되리라 확신한다.
Ⅱ. 전통의학의 근거
전통의학은 이러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원리나 약리기전의 규명이 어렵고 통계가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최근 의학계의 큰 흐름인 ‘근거중심의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근거가 부족하다고 인식되어 폄훼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근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흔히 말하는 서양과학적인 근거가 그 중 하나이지만 역사적인 근거라는 것도 있다. 최소 300년 이상 경과한 것은 설사 그것이 서양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높은 가치로 인정하는 역사적 근거를 부여한다. 따라서 최소 수백년, 아니 수천년동안 직접 인체를 대상으로 경험적인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전통의학에 대해서도 그 역사적 근거를 인정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등을 중심으로 발달한 전통의학에서는 精, 氣, 神, 血을 인체의 4대 구성요소라 한다. 이 중 精과 血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개념이지만 氣와 神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개념이다.
그러나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살아있는 사람이 기운이 전혀 없고 정신이 전혀 없다면 살아있는 것이 맞는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도 이러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사랑, 우정, 행복 등등 수 많은 용어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을 느끼고 존재함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지금의 서양과학으로 인체 구성요소의 반이 무형의 개념인 동양의 전통의학을 규명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즉, 전통의학은 비과학이 아니라, 지금의 현대과학이 전통의학의 과학성을 입증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며, 전통의학은 지금도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지금도 충분히 과학적이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양쪽의 학문적 소통을 위하여 꾸준히 눈에 보이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객관화하는 작업도 전통의학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Ⅲ. 전통의학의 미래
질병 중심의 획일화된 의료가 서양의학이라고 한다면, 사람 중심의 치료 및 예방의학, 체질의학으로 구성된 개인별 맞춤의학이 바로 전통의학이다.
1978년, 알마티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는 일차 보건의료에서 전통의학자의 역할이 필요함을 이미 선언하였다.
최근 들어 전 세계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만성, 퇴행성, 노인성, 성인병 등이 빈발하고 있다. 이러한 질환에서는 특히 치료보다 예방 및 관리가 더욱 중요하므로 각국의 전통의학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비용대비 효과가 우수하며, 급증하는 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전통의학의 산업규모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09년에 발표된 WHO의 보고서에 의하면, 2009년도의 전통의학 시장규모는 약 2500억불 정도로 이미 세계 IT 시장규모를 넘어섰으며, 2050년이 되면 약 5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세계 보건의료시장에서 전통의학의 역할과 기능, 상업적 가치 및 그 위상은 점점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Ⅳ. 향후 과제
각 나라마다 전통의학의 상황은 매우 다양하며, 편차가 큰 것도 사실이다. 즉, 전통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국민들의 선호도, 접근성, 안전성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및 체계, 자격기준, 국가 보건의료체계로의 편입 여부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전통의학에서의 상호협력과 정보 교류, 제도적 보완 등을 통해 이러한 편차를 극복하고,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며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전통의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전통의학은 국가의 산업 분야에서도 크게 기여함은 물론, 미래의 주류의학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