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임상데이터 활용 통해 개별 경혈 유효성 확인 등 연구 진행 ‘눈길’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 대부분이 한의원 임상현장에서 도출될 수 있는 수준의 임상데이터를 근거로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의 연구들이 분명 한의치료의 효과를 입증하는데 있어 많은 기여를 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실질적으로 임상 현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이 같은 데이터가 적극 활용돼야 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임상현장에서의 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임상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하려는 것이 결국 모든 연구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ICMART-iSAMS 2018’에서 최근 2년간 발간된 논문 중 침구의학 분야에 가장 의미있는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과학상’을 수상한 채윤병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경혈학교실).
이번에 수상한 논문은 2017년 ‘Medicine’지에 발표된 ‘경혈 주치증에 대한 공간패턴 분석’이라는 제하의 논문으로, 이 연구에서는 75명의 통증환자를 대상으로 환자가 터치패드 방식을 이용해 통증 부위를, 한의사는 이를 치료하기 위한 경혈을 각각 기록하고, 연구자들은 주요 경혈이 특이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체 부위를 확률적으로 계산해 시각화한 것이다. 즉 경락시스템이 경혈 자극을 통해 자극하는 부위 외에 신체 먼 부위까지 치료할 수 있는 원리를 제공하는 점에 착안, 자극 부위와 치료 부위와의 연계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툴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채 교수는 “이번 논문은 ‘經脈所過 主治所及(경맥이 지나는 부위가 경혈의 주치가 있다)’을 설명해 놓은 것으로, 예를 들면 팔 내측 ‘내관혈’은 심장·폐·위장 병변을 치료하고, 오금 부위 ‘위중혈’은 허리 부위를 치료하는 특성을 보여주는 등 주요 경혈의 주치 증상을 가시화해 경혈의 임상적 특이성을 연구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특히 임상 현장에서의 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부위가 아팠을 때 어떤 경혈을 선택하는지와의 연계성을 분석함으로써 경락의 침구치료와의 연계성을 설명하는 연구”라고 밝혔다.
채 교수는 이어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명확한 통계가 구축돼 있지는 않지만, ‘이 부위가 아프면 이 경혈을 선택해 침을 놓아야지’라는 생각이 한의사들의 머릿 속에서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이처럼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경혈 선택의 과정을 시각화해 설명해 놓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침구치료의 원리를 설명해 왔던 ‘경락의 실질’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지금까지 경락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경락이론이 침을 놓는 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채 교수는 “경락의 실질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의문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한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침을 놔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경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경락의 개념을 통해 침을 놓는 원리나 (각 경혈이)치료할 수 있는 범위 등을 설명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 같은 경락의 (고전적인)핵심적 개념을 밑바탕으로 이를 검증하고 확인해 나가는 연구들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연구 계획과 관련 채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각 질환에 따른 침 치료효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연구의 내용 대부분이 개별 경혈 효과를 밝히기보다는 최적의 경혈 조합을 통한 침 치료의 유효성을 검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음에 따라 개별화된 경혈의 특성을 확인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며 “이 같은 경혈의 개별화된 특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현재와 같은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채 교수는 이어 “동물모델을 활용한 동물실험에서는 실제 임상현장에서 접할 수 있는 질환모델을 구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며, 임상시험 역시 표준화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하나의 증상이 아닌 복합적인 증상을 갖고 의료기관에 내원하는 환자들의 모델에 적용하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제 임상현장에서 도출되는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연구를 통해 임상현장에서 한의사들이 품을 수 있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채 교수는 “이번에 ‘과학상’을 수상한 연구는 환자가 아픈 부위를 기록하고 이에 근거해 한의사가 경혈을 선택한 것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해당 경혈에 침을 놓음으로써 어느 부위가 좋아지는지는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현재 이번 연구의 후속연구로 해당 경혈에 침을 놓은 후 호전되는 부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해당 경혈의 유효성을 시각화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채 교수는 “앞서 언급했듯이 실제 임상에서 활용가능한 연구가 추진되기 위해서는 일선 개원가에서 도출될 수 있는 데이터가 가장 기본이 돼야 하는 만큼, 경락의 실질을 규명하거나 개별 경혈의 효과를 밝히는 연구 이외에도 임상 현장에서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툴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며 “이러한 데이터 수집 툴이 개원가에 적극적으로 보급되고, 이것이 활발하게 활용된다면 대규모 임상시험에 버금가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경혈의 선택뿐만 아니라 처방 선택 등 다른 분야에서의 연구에서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채 교수는 “최근 AI 기술을 활용해 의료를 바꾸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임상데이터를 활용한다면 AI한의사 등과 같이 한의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비록 AI한의사가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한의사들이 이런 증상에는 이런 경혈 혹은 이런 처방을 사용하는구나’라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채 교수는 “기초연구나 임상연구 모두 궁극적인 목표는 보다 나은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치료모델을 설정, 환자들을 겪는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것일 것”이라며 “나 자신 역시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하며, 임상 현장에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에서 관련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임상 현장의 한의사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