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지인이 빚은 복분자주로 술잔을 기울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친구는 전날 먹은 복분자주를 구해 달라며 떼를 썼다. 복분자주는 농익은 검붉은 과실 대신 푸른색을 띤 덜 자란 열매로 만든다. 생동감과 힘이 농축된 미성숙 열매는 약재로 쓰고 달달하게 잘 익은 열매는 그냥 과일로 먹는다. 약용은 쪄서 말린 후 가루를 내 쓰는 경우가 많다.
복분자(覆盆子)와 산딸기는 분명 다른 과실이다. 산딸기는 다 익었을 때 빨간색을 띠고 단맛이 강하며, 복분자는 다 익으면 검붉은 색깔이다. 하지만 약효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다양한 문헌에 ‘소변을 이롭게 하고 머리를 검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본초강목에는 “정력(스태미나)을 강화하고 머리를 삼단처럼 검게 유지한다”고 쓰여 있다. 그 때문일까. ‘복분자’라는 이름도 그 효능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소변발이 요강을 뒤엎는다(覆盆)’는 것. 하지만 마치 요강을 뒤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복분자 열매의 생김새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의학은 소변을 자주 보는 빈뇨 증상이 양기(陽氣·정력)와 관계가 깊다고 본다. 소변은 그냥 신장과 방광에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물총처럼 짜내는 것이다. 힘이 약해지면 소변은 역류한다. 소변이 역류하면 잔뇨감이 생기고 이는 소변을 자주 누고 싶게 만든다. 한의학은 바로 소변을 짜내는 이 힘을 양기(정력)로 본다. 고창 복분자시험장에서 비록 동물시험이지만 실험용 쥐한테 복분자를 5주간 투여했더니 남성 호르몬의 양이 무려 16배나 증가했다는 것. 조선의 왕들 중 유독 소변 때문에 고생한 왕이 많다.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도 전립샘 질환으로 고생한 분이다.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 민진원이 쓴 ‘단암만록’에는 ‘숙종 승하 시 곡읍(哭泣)을 하지 않고 까닭 없이 웃으며, 툭하면 오줌을 싸고 머리를 빗지 않아 머리카락에 때가 가득 끼어 있었다’라고 쓰여 있다. 경종은 결국 자식을 낳지 못해 이복동생 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야사에는 폐비된 장희빈이 사약을 받기 전 아들인 경종의 고환을 잡아당겨 성 불구자로 만들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기도 하다. 경종은 아홉 살 때 단의왕후와 결혼했고 그녀가 죽고 난 뒤 선의왕후와 결혼했을 뿐 후궁을 두지 않은 ‘특이한’ 왕이었다.
숙종 34년 2월 10일의 승정원일기를 보면 도제조 최석정이 당시 21세의 세자 경종의 빈뇨 증상을 우려하며 후사를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정력 강화를 위해 경종에게 육미지황환을 처방할 것을 건의한다.
경종은 자신의 빈뇨 증상을 치료하고 정력을 강화하기 위해 복분자를 약차로 자주 음용했다. 경종 재위 1년, 날이 더워지면서 열이 오르자 경종은 소변이 더욱 잦아진다고 호소한다. 영의정 김창집은 내의원 의관들과 의논한 끝에 복분자차를 처방한다. 승정원일기에는 경종이 복분자차에 대해 ‘맛도 좋고 소변이 시원하게 잘 나온다’고 크게 만족해하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기록들로 미뤄보면 정력 강화제로는 어떨지 모르나 복분자가 빈뇨 등 소변장애 증상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