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의 계비 장렬왕후는 인조 16년(1648년) 15세의 나이에 왕후로 책봉됐다. 인조와 나이 차는 무려 29세, 하지만 인조는 후궁 소용 조씨만을 총애했다. 그 때문일까. 인조와 22세 때 별거한 후 독수공방하며 한 많은 삶을 마쳤다.
인조 23년 실록에는 “후궁 조소용의 이간질 때문에 딴 방에 별거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으나 비밀스러운 궁중의 일이어서 아는 자가 없었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결국 ‘떠돈 말’은 현실이 돼 왕후는 경덕궁(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긴다.
별거의 시발점은 왕후의 지병인 ‘풍간(風癎)’ 때문이었다. 현대적 병명으로는 간질. 의관들은 청심온담탕과 용경안신환을 처방하고 각 혈에 뜸을 뜨는 등 치료 경과를 일일이 임금께 보고했다. 그런데 인조는 갑자기 사헌부 사간원을 불러놓고 마치 왕비의 지병을 의관들이 자신에게 숨겨왔다는 듯 이렇게 하명한다. “중궁의 병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때 걸린 것이 작년에 와서 재발해 근일에는 더욱 심해진 것이다. 어의인 최득룡이 왕비의 병을 알리지 않았으니 추고(推考)하라.”
실록은 인조의 이런 이상한 언행을 이렇게 해석했다. “임금의 의도가 죄를 다스리는 데에 있지 않고 그 병의 증상을 궁 밖으로 알리려는 데에 있었다….” 별거의 이유를 ‘후궁 조소용의 이간질’이 아닌 자신이 몰랐던 왕비의 지병 탓으로 돌린 것.
별거 후 1년, 장렬왕후는 코피를 쏟고 피를 토한다. 한의학은 이런 경우를 ‘칠정동혈(七情動血)’, 즉 극심한 스트레스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비출혈(鼻出血·코피) 증상으로 진단한다. 조선시대에 간질을 앓았다는 사실을 속이고 왕후로 간택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었을까. 피를 토하는 왕후의 증상은 후궁 조소용에게 밀려난 분노와 억울함,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준다.
사실 비출혈 증상은 중병을 앓은 후 또는 극심한 노동 이후 발생하는 체력 저하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현대의학으로 보면 고혈압, 동맥경화증, 간장질환으로 인한 비출혈이 중병에 속한다.
코에서 코피가 나면 먼저 얼음이나 차가운 수건으로 코 날개 부분을 덮어 혈관을 수축시키는 게 급선무다. 코 날개에서 비중격을 향해 두 엄지손가락으로 압박하면 혈관 부위가 압박되면서 지혈된다. 코피가 잦을 때는 술, 담배, 카페인, 매운 음식 등 혈관을 흥분시키는 음식은 피하는 게 좋고 무거운 짐을 드는 등 코 혈관에 압력이 가해지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어의들이 장렬왕후에게 처방한 지혈제는 연근즙과 부들가루인 포황말이다. 연뿌리는 체내의 수분을 위로 끌어올려 코가 건조해지거나 얼굴에 열이 오르는 증상을 치료한다. 비출혈이나 코 건조증 치료에 쓰이는 명약이다. 심신 허약에 의한 코피에는 밤이 좋다. 구워 먹거나 속껍질 달인 물을 자주 먹으면 된다.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