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뽕 나뭇잎>
병자호란은 인조에게 삼전도의 치욕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란이 끝난 이후에는 청에 포로로 잡혀갔다 조선으로 도망 온 사람들을 잡아 다시 돌려보내는 ‘쇄송(刷送)’ 문제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당시 쇄송의 참상을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이역 땅에 잡혀가 돌아온 백성을 도적들처럼 결박하니, 자식은 부모와, 남편은 아내와 생이별을 했다. 헤어질 때 스스로 목매 죽기도 하고, 굶어 죽기도 하며, 수족을 잘라 이별을 늦추려 하거나 도중에서 죽기도 했다.”
인조는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말을 하려면 목이 메며 부끄럽고 두려워서 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당시의 고통을 표현했다. 이후 인조는 두 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첫 번째는 사수(邪祟·귀신이 붙은 듯 제정신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되는 증상), 두 번째는 이명(耳鳴·귀울음)이다.
예조참의 이준은 “왕의 병은 원기가 허약해 생기는 호매(狐魅·여우에게 홀린 듯 정신 줄을 잃는 질환)나 사수라는 질환으로 보인다”고 진단한다. 이에 부화뇌동한 내의원은 ‘세간에 사기(邪氣) 퇴치에 특효인 침법을 소유한 이형익이라는 자가 있으니 급료를 주고 불러야 한다’고 고한다. 떠돌이 침의(鍼醫)였던 이형익은 “번침(燔鍼·불에 달궈 지지듯이 놓는 침)으로 사기를 물리친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녔는데 끝내 왕은 그를 불러 치료를 맡겼다. 이후 왕의 치료실에는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한다.
사수보다 인조를 괴롭힌 질병은 이명이었다. ‘귀가 운다’는 것은 내 마음이 그만큼 힘들다는 내 몸의 호소이자 신호일 경우가 많다. 인조는 이명 증상 이외에도 귀 막힘, 귀 가려움증, 귀가 막힌 듯 답답한 증상, 귀안에서 액체가 나오는 증상, 귀가 붓는 증상 등 귀와 관련한 온갖 질병을 앓았다.
내의원 의관들은 연속해 헛발질을 한다. 처음엔 이 귀 증상들의 원인을 감기 후유증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냈지만 효험이 없었다. 다음엔 원기가 약해진 신허(腎虛)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여겨 투이통(透耳筒)으로 치료했다. 일종의 외과 치료술로 조피 열매씨, 파두살, 석창포, 송진을 가루로 만든 약이다. 이번에도 효험이 없었다. 그때서야 내의원 의관들은 임금의 이런 귀 증상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병인 울화증에서 온 것으로 파악하고 화를 내리는 치료로 인조의 이명을 달랬다.
이명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마음 병인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흥분하면 거친 숨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듯 귀도 고통스러우면 소리를 낸다. 이명은 내 마음이 ‘나 힘들어 죽겠어’ 하며 내는 일종의 비명이다. 백성을 청나라의 사지로 몰아넣고, 아들인 소현세자와 며느리를 죽음으로 내몬 인조의 심적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귀가 울어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본초강목에서 추천하는 이명 처방은 꾸지뽕나무 뿌리껍질이다. 원기를 간직하는 신장을 돕고 이명과 난청에 도움이 크다는 약재다. 차(茶)처럼 음용해도 좋고 술에 석창포와 담가서 한잔씩 마셔도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