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54세에 승하했다. 69세에 죽은 맏형 양녕대군이나 92세에 임종한 둘째형 효령대군보다 훨씬 단명했다. 실록 등 각종 기록이 전하는 세종의 실제 모습은 1만 원권 화폐에 나오는 어진(御眞)과는 거리가 멀다. 실록은 세종에 대해 ‘비중(肥重)’ ‘건습(蹇濕)’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말로 하면 비만이거나 과체중이었고, 다리를 절었다(蹇)는 얘기다. 풍수가에 따르면 이장할 때 세종대왕릉인 영릉에선 ‘다리 짧은 대왕이 영원히 쉴 자리(短足大王 永乏之地)’라는 비기(碑記)가 나왔다고 한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운동에 많은 장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 비친 세종의 모습은 그가 왜 형제들이나 다른 왕들에 비해 단명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생각은 늘 자신의 건강보다 조선의 미래와 성리학적 도덕관의 완성에 치우쳐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항상 백성과 신하를 먼저 챙겼다. 재위 14년 세종은 갈증이 심해지고 살이 확 빠지는 증세로 내의원을 심각한 고민에 빠뜨렸다.
내의원은 우선 음식으로 증상 치료에 나서 왕에게 닭, 꿩, 양고기를 추천했다. 하지만 세종은 이를 깔끔하게 거절했다. “어찌 내가 스스로의 건강(自奉)을 위해 이같이 후한 음식을 먹겠는가. 양고기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나는 물건이 아니니 더욱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조선의 장수 대왕이었던 영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살아생전 ‘신력탕’이란 처방만 128회에 걸쳐 복용했다. 신력탕에 들어간 주요 약재가 바로 세종이 거절한 양의 신장(羊腎)이었다. 재위 42년 영조는 “양의 신장은 구하기가 아주 어렵지 않느냐”고 신하들에게 물었지만 그때뿐, 이후 복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신력탕 복용 후 “난청이 좋아지고 눈이 밝아졌다”며 신하들을 압박했다. 128회의 탕약 복용에 쓰인 양의 수도 엄청났을 것으로 추산된다. 많은 역사가는 영조가 장수한 밑바탕에 보리밥을 즐겨 하고 반찬 수를 줄이는 등 검약한 식생활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영조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은 음식은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초장, 사슴꼬리 등 귀하디 귀한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 의서인 ‘본초강목’은 대표적 보양식으로 인삼과 양고기를 추천한다. ‘인삼은 기운을, 양육(羊肉)은 형태를 보충한다’고 썼다. 인삼이나 양고기 모두 양기(陽氣)를 보호하는데, 양고기는 마른 사람을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 육체의 보신에도 특효다. 양고기의 가장 큰 특성은 인체의 모든 곳에서 양적 힘을 북돋아 준다는 점이다. 특히 시력과 청력, 폐의 호흡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가 좋다. 시력을 좋게 하는 데는 양의 간으로 만든 ‘양간환’을, 폐가 나빠 호흡에 지장을 겪는 사람에게는 양폐탕이 대표적 처방이다. 청력에도 양이 좋다. 양의 신장으로 만든 자석양신환이 특효다. 이는 민간 처방으로도 오래 쓰여 왔다. 실제 자라(500g 안팎)와 양고기(250g)를 함께 끓여 먹으면 이명이나 저하된 청력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