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4대 왕 선조는 일생 동안 기침으로 고생한 임금 중 한 명이다. 감기에 걸릴 때마다 기침이 심했는데, 가래가 목에 걸려 호흡이 곤란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호소했다.
가래를 없애는 거담제 계통 약물을 복용했지만 증세는 말끔하게 낫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약은 ‘죽력(竹瀝)’이었다.
죽력은 대나무를 불에 구워 나오는 진을 모아 만든 약재다. 여름철 대자리에 누우면 시원하고 열을 내린다. 가래를 삭이는 특별한 효능도 가지고 있다.
재위 40년 선조가 중풍으로 의식을 잃자 어의 허준이 응급 처방한 약도 죽력이었다.
현대 의학에서 기도를 확보하는 시술과 마찬가지다. 재위 41년 선조가 임종을 맞을 때도 목에 끓는 가래를 빼내기 위해 죽력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광해군의 연인 김개시가 일부러 떡을 먹여 선조의 기도를 막히게 했다는 설도 있지만 여러 기록으로 미뤄 보면 기도를 막은 것은 가래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록에 따르면 선조 임종 당시 왕세자인 광해군도 “열을 치료하는 약(죽력과 청심환)을 준비하라”고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독살설로 유명한 소현세자의 공식 사인은 학질이었다.
당시 학질은 모기에 따른 전염병이 아니라 오한과 발열이 오르내리는 일종의 만성 감기를 지칭한 질환이었다. 실제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기침으로 고생한 기록이 많다.
귀국 전 세자는 중국 선양에서 청의 구왕 도르곤을 따라 산해관을 거쳐 베이징에 입성하는 군대를 따라 종군했다. 선양에 돌아온 뒤에도 베이징에 귀국 인사를 갔다 온다.
이런 엄청난 여정을 한꺼번에 소화한 소현세자는 기침과 천식을 호소했다.
청폐탕으로 기침을 진정시켰지만 가래가 들끓자 죽력으로 치료했다.
조선의 죽력은 청나라 황제가 부탁할 정도로 품질이 탁월했다.
인조 21년 실록에는 ‘청인이 세자의 관소에다 말하기를 황제가 풍증(風症)으로 머리가 어지러우니 죽력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기록도 보인다.
하지만 죽력 공납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죽력과 함께 사즙고(四汁膏)도 기침 치료에 많이 쓰였다.
한의학은 마른기침이나 담이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아 생긴 기침에는 자윤성을 주로 처방했다.
영조의 오랜 감기로 생긴 기침을 치료하려고 어의들이 죽력과 함께 권한 사즙고도 자윤성 과채(果菜)류가 주재료였다.
사즙고에는 배 생강 박하 꿀 등 4가지 달콤하고 매운 과채류가 들어간다.
죽력은 기술이 필요하지만 사즙고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요즘도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씨를 뺀 배의 과육을 강판에 갈아 즙을 내고 생강, 박하도 짓찧어 즙을 짠다. 간 배즙을 냄비에 넣고 센 불로 잠시 끓이다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약한 불에 걸쭉한 상태가 될 때까지 졸인다.
여기에 같은 양의 꿀과 박하즙, 생강즙을 넣고 더 끓이면 완성된다.
한 번에 한 숟갈씩 수시로 끓는 물에 넣고 타 먹으면 기침과 노란 가래, 인두염으로 인한 통증에 도움이 된다. 박하 대신 무를 넣어도 좋고 박하를 빼고 고아도 무방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