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의 사진은
드라마 '마의'에서 현종역활을 한 배우 한상진으로 대체했습니다.)
현종,
정통성시비에서 비롯된 질병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목숨 잃어
- 설사, 호흡곤란, 가슴 답답증 호소
갑상선종 다스리는 하고초
한의학은 곤포의 약효를 이렇게 설명한다. 겨울이 되면 두꺼운 옷을 입지만 얼굴은 맨살인 채 내놓는다. 한의학은 이를 양적인 기가 얼굴에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반면에 몸통은 음적이다. 곤포는 다시마 종류로 바닷물에서 자라며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음적인 장소인 물 속에서만 살아간다. 사람의 몸통과 같이 음적인 것이다. 우리 몸의 양기가 만들어내는 화(火)는 몸통 속의 음적인 물질을 부글부글 끓어올렸다가 몸통과 얼굴 사이인 목에서 식으면서 묵처럼 응결된다.
지금으로 말하면 갑상선종의 형태인 나력·영류( 瘤)·핵환(核患)과 같은 종기 질환의 특성은 음적 영역의 끝부분인 목 위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곤포가 물 밖으로 못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의학은 이들 종기 질환의 원인을 응결한 기와 열이라고 본다. 열을 받아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이 식으면서 뭉치고 굳는데, 그 굳은 형태가 바로 종기라는 것이다. 곤포는 차가운 기운으로 열을 배설하고 짠맛으로 딱딱한 종기를 무르게 연화시켜 뭉친 것을 풀어주는 대표적 약물이다.
하고초도 이런 질환에 사용되는데, 여름에 꽃이 피고 나면 곧 죽는다고 해‘夏枯草’란 이름이 붙여졌다. 채취 시기는 하지(夏至) 전. 하지가 되면 마르기 시작하므로 그 전에 채취해야 한다. 꽃이삭과 풀잎을 채취해 말린다. 한의학은 약물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력을 응용해 질병을 치료하는데, 하고초의 특징적 생명력은 가장 더운 여름에 시든다는데 있다.
인체에선 화병이 여름과 같은 상태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열이 오르며 숨이 차오른다. 하고초는 여름의 무더위를 시들게 만든다. 그래서 하고초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나 고혈압 증상에도 효능을 보인다. 필자는 이런 효능을 논문을 통해 증명했다. 약물을 민간에서 사용할 때는 차로 먹는 것이 좋다. 술에 담가 아홉 번 찌고 말리는 게 좋다.
‘정통성 스트레스 증후군’
종기인 나력과 핵환은 조선시대 의관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동의보감은 이들 질환을 ‘결핵’이라고 표현했으나 현재의 그것과는 다르다. 동의보감의 결핵은 화기와 열이 한곳으로 몰려 맺힌 작은 멍울을 가리키는데 과일의 씨와 비슷하다. 따라서 쨀 필요는 없고 열기만 흩뜨러지면 저절로 삭는다. 현종 10년 11월16일 임금의 턱 밑에 핵환이 생기자 의관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효종이 종기를 치료하다 출혈로 죽은 트라우마가 짙게 깔려 있었다.
“상의 오른쪽 턱 밑에 종기가 자리 잡고 있는데, 고름이 잡힌 지 오래됐다. 곧 터질 듯한 기세였는데 의관들은 영류인가 의심하고 있었다. 도제조가 큰 소리로 ‘의관이 의원이라는 이름만 지녔지 무슨 소견이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이튿날 다시 약의(藥醫)와 침의 제조들이 난상토론을 하자 현종은 “길가에 집을 지으면 3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현종은 갈팡질팡하는 의관들을 보고 불안해했다. 실록은“막상 침의들이 침으로 종기를 따려 하자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고 기록했다.
현종은 딸 명혜공주와 명선공주가 재위 14년 4월과 8월 잇따라 죽자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는 빈번하게 복통을 호소했다. 소변 보기가 곤란해지고 설사가 이어졌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 생명력의 근원인 곡기를 보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다. 인체의 흙인‘土’기운은 소화기인 비위(脾胃)의 기능이다. 생명력은 따스한 온기인데, 온기가 떨어지면 배가 차가워지면서 복통과 설사가 이어진다. 그해 5월부터 설사 처방인 청서육화탕, 창늠산, 삼련탕, 반총산, 수자목향고 등을 복용했지만 멎지 않았다.
최후의 일격은 정치적 스트레스였다. 현종 15년 초 인선대비(효종의 부인)가 죽고 2차 예송논쟁이 시작되자 1차 예송논쟁 후 겨우 사라졌던 가슴 답답증이나 불면의 증후가 다시 도졌다. 정통성 시비로 인한 스트레스 증후군이 재발한 것이다. 스트레스는 여러 단계로 나뉜다. 경고반응기, 저항기, 피로기로 나뉘어 생태 반응이 나타난다. 경고반응기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자신의 저항력으로 극복해 원상태로 복귀하려고 애쓰는 상태고, 저항기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아직 저항력이 있어 겨우 지탱하는 시기다. 하지만 만성적인 상태가 되면 저항력이 사라지면서 인체는 해삼 퍼진 것처럼 흐물흐물한 상태가 된다.
일각에서는 독살설을 제기하지만 현종은 정통성 시비에서 비롯된 질병의 늪에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현종은 그해 8월18일까지 설사와 호흡곤란, 가슴의 답답증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