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5-06-30 12:00
제 목
조선왕조와 한의학 - 숙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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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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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 복통, 눈병 달고 산 숙종 45년 재위 내내 간질환 고통
마도 가장 이른 나이에 한약을 먹은 사람은 현재 해병대에서 복무 중인 필자의 작은 아들(한의대 재학)일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황달을 앓아 한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당시 인진호탕을 처방해 10cc씩 나눠 사흘 정도 먹였다. 그랬더니 증상이 바로 사라졌다.
요즘 ‘한약은 간(肝)에 나쁘다’는 양방쪽 의견만 듣고 한약 복용에 거부감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간질환에 한약이 널리 쓰였고 약효도 좋았다. 한약 말고는 달리 약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약이 간에 나빠 환자에게 해를 끼친 사례는 보기 힘들다. 조선의 왕들도 간염이 왔을 때 한약으로 치료했고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대표적 인물이 숙종(李諄·1661〜1720)이다. 숙종의 간염 증상은 15세 때인 재위(1674〜1720) 2년 9월에 시작된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9월13일 머리가 아프고 인후통이 생기자 의관들과 공조좌랑 이국헌이 감기로 진단하고 대표적 감기 처방인 형방패독산을 복용케 한다. 이튿날에도 두통과 인후통이 지속되자 숙종의 외당숙 김석주가 나서 의관들과 함께 처방을 변경한다. 소시호탕에 맥문동, 갈근, 지모, 황백을 더하여 처방한다.
이후 증세는 호전되는듯 했지만 9월17일 갑자기 수라를 들기 싫어하면서 오한과 오심 증상이 시작된다. 가슴이 답답한 증상에 초점을 두고 양격산을 처방하기도 하고, 밥맛을 당기게 하는 이공산·소요산이라는 처방으로 바꿔보기도 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9월25일 숙종의 얼굴과 눈이 누렇게 변해가자 의관들은 황달증세로 진단하고 처방을 급선회한다. 황달을 치료하는 시령탕을 처방한 지 3일만에 얼굴과 눈의 노란빛이 가시기 시작한다. 피부색에 윤기가 돌고 오심 증세가 줄어들면서 밥맛이 돌아왔다.
시령탕을 쓴 지 5일이 지난 9월30일 황달빛은 완전히 사라졌고 수라와 침수도 일상적 상태가 되면서 시령탕을 보다 온화한 처방인 백출제습탕으로 바꿨다. 10월2일 황달을 치료한 지 7일만에 의관들에게 ‘평상시와 같으니 더 이상 묻지마라’고 하교한다.”
肝은 봄과 나무를 상징
현대의학은 황달을 유발하는 간염을 일반적으로 전황달기-황달기-회복기 3기로 나눈다. ‘전황달기’는 황달이 생기기 1〜2주 전의 기간으로 약간의 열감과 관절통, 피로감, 무기력증 등 감기 증상과 같은 증세가 나타나고 식욕부진, 오심, 구토 등 소화기계 증상과 상복부 불쾌감을 호소한다. ‘황달기’는 황달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1〜2주간으로 증상이 가장 심한 기간이다. ‘회복기’는 황달이 점차 사라져 1〜6주 뒤 회복되는 기간이다.
숙종의 치료 기록들은 이런 해석과 딱 맞아 떨어진다. 한약 복용 일주일만에 황달이 사라지고 간염 증세가 회복됐다는 것은 현대의학의 시각으로 봐도 진기록이다. 그만큼 한약의 간염 치료효과가 뛰어나다는 증거다. 안타까운 사실은 숙종이 어린 시절 황달을 앓았으면서도 간 건강을 관리하지 못하고 간과 관련된 질병을 앓다 간경화 증세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그는 황달 발병 이후에도 45년을 더 살았지만 평생 간질환 관련 증상을 나타냈다.
한의학에서 간은 봄과 나무를 상징한다. 여린 새싹들이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것은 봄이 가진 생명력, 즉 힘 때문이다. 새싹의 생명력, 자신보다 수백배 무거운 흙더미를 뚫고 지상으로 솟아나는 힘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봄은 ‘spri-ng’이다. 용수철처럼 압축된 힘으로 튀어오르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뜻이다.
눈은 간의 거울이다
상징은 현상과 내면 질서의 조합이다. 이처럼 간의 본질은 튀어오르는 양기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솟아오르는 힘을 수렴하고 진정시켜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려 한다. 이는 간이 가진 또 하나의 성질, 즉 음기다. 우리 신체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체온을 섭씨 36.5도로 유지하는 것처럼 간도 항상성을 추구한다. 음기와 양기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양적인 뜨거운 힘은 정신적으로는 흥분과 분노로 표출되며 투쟁을 주도한다. 눈은 불꽃으로 이글거리다 심하면 병이 든다. 눈은 간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렇게 밖으로 터져 나가는 화를 진정시키고 수렴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힘이 음기다. 음기의 대표적 음식은 신맛을 내는 것들이다.
한의학은 간에 질병이 생기면 간과 관계된 계통의 기관에 전신적 증상을 일으킨다고 본다. 흥분을 잘하고, 눈이 나빠지며, 아랫배가 긴장되고 굳어진다. 아랫배는 튀어오르는 간의 양적 속성을 드러내는 밑바닥이다. 동의보감과 중국 의학서 난경(難經) 또한 아랫배와 눈에 나타나는 증상, 화를 잘 내는 성격 등을 간질환 진단의 요점으로 봤다.
‘간이 병들면 양쪽 옆구리 아래가 아프면서 아랫배까지 땅기고 성을 잘 낸다(동의보감).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며 얼굴빛이 퍼렇고 성을 잘 낸다. 속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배꼽 왼쪽에 동기(動氣)가 있으며 눌러보면 단단하고 약간 아프다. 병으로는 오줌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대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눈은 간이 허할 때 잘 보이지 않는다(난경).’
이들 의학서는 간이 허할 경우, 즉 음기가 모자랄 때는 신맛이 나는 음식인 참깨, 개고기, 자두, 부추를 먹어 간을 보하도록 했다. 피로할 때 마시는 한방 드링크제에 신맛이 나는 작약이 많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간이 실하다는 개념은 간이 투쟁을 주도하는 장군이라는 정의에서 유래한다. 투쟁은 긴장이 필수이며 근육의 지나친 긴장은 쥐가 날듯 땅기는 증상을 유발한다. 이런 증상을 완화하려면 단맛이 든 멥쌀, 대추, 쇠고기, 아욱 등을 권한다. 이런 논리가 한의학에서 말하는 식보(食補)의 핵심이다.
‘애간장’ 한의학적 진단 핵심 숨어 있어
숙종은 한의학서에 나오는 이런 모든 증상을 평생 달고 살았다. 15세 때 황달성 간염을 앓은 이후 작은 일에도 흥분을 했으며 쓸데없이 애간장을 태웠다. ‘애간장’이라는 말 속에도 간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진단의 핵심이 숨어 있다. 오죽하면 간장(肝腸)을 녹이고, 태우고, 졸이고, 말린다는 표현을 썼을까. ‘애’는 초조한 마음 속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초조함을 강조해서 붙인 것이다. 실록은 숙종이 분노한 모습을 여러 차례 기록했다.
“임금의 노여움이 폭발하여 점차로 번뇌가 심해져 입에는 꾸짖는 말이 끊어지지 않고, 밤이면 또 잠들지 못하였다. 내의원의 문안에 비답하기를 ‘마음이 답답하여 숨쉬기가 곤란하고 밤새도록 번뇌가 심하여 자못 수습할 수가 없다’고 했다.”(재위 14년 7월16일)
재위 21년 9월13일 숙종은 계속된 흉년에 대한 해결책을 쓴 비망기(備忘記)를 신하들에게 내리면서 “큰 병을 앓은 나머지 조금만 사색함이 있어도 문득 혈압이 올라온다”고 했다. 실록에는 달아오르는 열을 주체하지 못해 화를 내는 숙종 때문에 신하들이 덜덜 떠는 모습을 묘사한 대목도 있다.
“최계옹이 상소하기를, 신하들이 벼슬을 질곡(桎梏)처럼 여기고 궁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워하며 벌벌 떤다. (임금 앞에 서면)발을 포개고 서서 숨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당시 홍문관이었던 최계옹은 1710년(재위 36년) 숙종의 지나친 편당성과 화를 잘 내는 성격적 결함에 직격탄을 날리는 상소를 쓴 후 제주목사로 좌천된다. 숙종은 분노조절 장애 증후군쯤 되는 질환을 앓은 셈이다. 모두가 간이 튼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한의학에선 아랫배가 땅기고 아픈 증상을 산증(疝症)이라고 하는데, 간에 문제가 생기면 이런 증상이 찾아온다. 꼭 간질환이 아니어도 산증이 생길 수 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성관계를 가진 후 여성의 아랫배가 차갑고 땅기고 아프면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이에 속한다. 성관계 후 아랫배가 물에 의해 식으면서 근육이 굳어져 아래를 데워야 할 기운들이 근육 사이로 스며들지 못하고 위로 치밀어 올라 생긴 증상이다. 이런 증상에는 반총산이라는 처방이 특효다.
중국 최고(最古)의 의학서인 황제내경은 산증을‘아랫배에 병이 생겨서 배가 아프고 대소변이 나오지 않는 것인데 찬 기운 때문에 생긴다’고 설명했으며, 의학입문은 ‘산증이 간의 질병으로 발생한다’고 규정했다. 숙종의 첫 산증 발병 기록은 재위 22년 12월3일에 나온다. ‘상(上)에게 처음 산증이 발병하여 아랫배가 찌르는 듯한 자통이 심했다. 상황이 매우 급하여 곡골이라는 경혈에 뜸을 뜨고 나았다’고 적혀 있다. 재위 29년에는 숙종이 자신의 산증과 함께 화증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상이 말하기를, 몇 년 전부터 이병(산증)의 뿌리가 이미 생겼는데, 처음에는 약간의 통증을 느낄 뿐이더니 어느새 이 지경이 되었다. 상이 또 탄식하기를, 사람이 자고 먹는 것을 제때에 하여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였다. 성질이 너그럽고 느슨하지 못하여 일이 있으면 내던져두지를 못하고 출납(出納)하는 문서를 꼭 두세번씩 훑어보고, 듣고 결단하는 것도 지체함이 없었다. 그러자니 오후에야 비로소 밥을 먹게 되고 밤중에도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래서 화증(火症)이 날로 성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내가 병의 원인이 있는 곳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