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드라마 '이산'에서 영조역을 맡은 탤런트 '이순재'님
영조, 자신의 소화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기름진 음식은 멀리하고, 자신의 체질에 맞게 잘 먹은 것이 ‘건강관리의 포인트’
체질에 맞는 식습관 실천
이렇듯 영조는 연제법으로 위장의 냉증을 없애는 한편으로 탕약을 적극적으로 복용해 체내의 온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위장의 온기를 북돋우기 위해 인삼과 계지, 건강 등이 들어간 이중탕을 복용했는데 한번 먹어본 후 효과가 확실하자 자신에게 가장 맞는 처방으로 확신했다. 이후엔 이중탕에 녹용과 우슬, 부자를 넣어 건공탕이라고 불렀다. 건공탕은 나라를 건국한 공로와 같은 처방이라는 뜻이다.
영조는 그만큼 이중탕을 사랑했다. 그는 이중탕을 자신이 가장 아끼던 만능 기술자 최천약의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같다며 상복하면서 건강 지킴이로 삼았다. 영조 41년 12월29일 제조들이 “건공탕의 효과로 얼굴이 화창해졌다”고 하자 영조 스스로 “인삼의 정기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 해 인삼 20근을 소비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모두가 영조가 매일 한약을 복용할 정도로 건강을 챙긴 덕분이었다.
영조가 기름진 음식이나 음주를 멀리 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금주령을 철저히 지킨 탓인지 처방에 술이 들어가지 않아 효과가 떨어진다고 신하들이 건의할 정도였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은 영조가 감선이나 철선(撤膳·국상이 났거나 나라에 재앙이 들 때 임금이 근신하기 위해 육선(肉膳)을 들지 않던 일)을 하면서 철저히 검약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 4가지를 꼽는 모습은 전혀 달랐다. 송이버섯, 생전복 새끼, 꿩고기, 고초장(苦草醬·고추장)이 그것이다.
영조가 사족을 못 쓸 만큼 좋아한 것은 사슴꼬리였다. 79세에 이르러서도 “반찬 중에서 사슴꼬리만 손을 댈 수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가 특히 즐긴 것 중 하나는 죽은 효장세자의 부인 현빈이 준비해준 밤이었다. 반면 그가 싫어한 것은 생선회나 기름진 음식 등 자신의 소화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자신의 체질에 맞게 잘 먹은 것이 건강관리의 포인트였던 셈이다.
조선시대까지 약차는 기호음료처럼 먹는 요즘과 달리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쓰였다. 하나의 처방이었다.
영조가 다리 힘이 모자라면서 즐겨 먹은 것이 송절차다. 승정원일기는 송절에 대해 ‘송절은 솔뿌리를 가리키는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어혈을 없애는 약재다. 황토에서 자란 어린 소나무의 동쪽으로 난 뿌리를 주재료로 오가피 우슬을 넣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연구자 중엔 ‘송절차를 마시고 술에 취했다’는 실록 문구를 근거로 송절차가 금주령을 피하기 위한 영조의 눈속임 술의 한 종류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영조가 술을 즐긴 적이 없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는 억측에 가깝다. 영조는 송절차의 효험을 많이 본 탓인지 5년 동안 음용한 후 복용을 중지했다.
‘앎’으로 극복한 허약 체질
어깨 통증도 영조를 오랫동안 괴롭힌 질병이었다. 침요법은 물론 고약 종류를 직접 붙이거나 다른 보조요법도 사용했다. 솔잎을 쪄서 따뜻하게 감싸는 방법, 누에고치를 볶아서 붙이는 것, 천초를 술과 달여서 팔에 수건으로 감싸는 방법 등이 동원됐다. 영조의 체질에 맞게 탕약도 복용했는데, 특기할 점은 아침에 일어나 팔을 전후로 흔들고 난 뒤 갑자기 좋아졌다며 운동치료의 효험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영조는 허약한 ‘저질체력’임이 분명했다. 평생 산증으로 인한 복통과 설사, 소변장애 증상으로 고통받았다. 특히 즉위 초기엔 산증과 소화불량으로 힘들어했으며 중년기엔 어깨 통증과 회충으로 인한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말년엔 극심한 피로와 하지무력감, 건망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가 조선 왕들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장수에 성공한 왕이 된 비법은 평범했다. 그는 자신의 체질을 알고 질병에 대비하며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영조는 정치적, 태생적으로 가해지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도 건강 비결이 자기를 바로 알고 약점과 단점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실천하는 평범한 것임을 증명한 유일한 왕이었다.
이상곤 원장·갑산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