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5-09-22 10:38
제 목
조선왕조와 한의학 정조 – 002
작성자
코끼리
1,592
조회수


조선시대, 왕을 치료할 때 숙련된 궁중의사뿐 아니라 뛰어난 의술을 지닌 세간의 명의 초빙하기도 해


종기 치료하는 우황
정조가 늘 먹었다는 우황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효험을 지녔을까. 우황은 소의 담낭, 담관에 생긴 결석이다. ‘본경소증’은 이렇게 설명한다. “봄철에 전염병(바이러스성)이 돌면 소도 독을 마신다. 독은 육체와 정신의 빈 곳을 공격한다. 소는 튼튼한 육체와 고삐를 맨 순종하는 마음에 틈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정기를 모아 독을 진압한다. 독은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부에서 응결한다. 이런 힘의 정수가 우황이다. 이 튼튼한 힘의 정수는 정서장애나 열성 경련을 치료한다. 소의 몸에 우황이 있으면 밤에 몸에서 빛이 나고 눈에 핏발이 있으며 수시로 반복해서 운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물에 자기 모습을 잘 비춘다. 동이에 물을 받아 소한테 대주면 웩웩거리다 물에 우황을 떨어뜨린다.”
쓸개즙은 본디 검은색이지만, 약간 희석하면 푸른색이 되고 많이 희석하면 노란색이 된다. 황달은 소장으로 빠져나와야 할 담즙이 나오지 못하고 역류해 전신의 혈액으로 퍼지면서 희석된 담즙의 색깔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한의학에선 아이들이 놀랐을 때 푸른똥을 싸는 것을 담이 놀라 차가워지면서 반쯤 희석된 상태로 파악한다. 음식을 입에서 이빨로 가루를 내고 위에서 반죽하고 나면 자연 그대로의 색을 띤다. 밥은 흰색, 홍당무는 붉은색, 김은 검은색이다. 그러나 대변은 황금색이다. 반죽된 음식이 소장을 통과할 때 쓸개즙이 골고루 침투해 완전히 삭혀지면서 누렇게 변하는 것이다.
쓸개즙의 삭히는 힘은 타박상이나 상처를 입었을 때 생기는 어혈 제거에도 사용된다.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 웅담을 쓰는 것도 이런 기전이다. 옛날에 대변으로 어혈을 치료하던 것도 담즙 색소가 스테르코빌린으로 변한 힘을 빌린 것이고, 요료법(尿療法)도 소변에 포함된 담즙 색소가 유로빌린 성분으로 변한 힘을 빌려 혈전을 녹이기 위한 것이다. 우황을 고를 때도 삭히는 힘을 시험한다. 우황은 소의 쓸개가 농축돼 담석에 이른 것이므로 삭히는 힘이 아주 강하다. 수박에 그어서 수박무늬 위에 줄이 생겨야 진짜 우황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담(膽)은 마음의 상태와 연결되기도 한다. ‘담이 크다’는 말은 겁이 없고 용감하다는 뜻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말에겐 쓸개가 없다. 그래서일까. 말은 바람소리에도 놀라고 자신이 뀐 방귀에도 놀란다. 말 먹이를 주러 갔다 뒷발에 차이는 경우도 흔하다. 말은 겁이 많아 작은 소리에도 갑작스레 날뛰며 그러다 기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반면 곰은 침착함과 용감함의 대명사인 것을 보면 쓸개의 효능을 짐작할 만하다. 우황은 삭히는 힘으로 종기가 잘 나는 사람을 치료하고 와신상담해 화를 없애는 힘을 발휘하기에 우황청심환에 사용한다.
 
피재길과 이동의 활약
 
금은화 역시 종기의 성약이다. 인동초의 꽃인데 금빛과 은빛이 나는 꽃이 소박하게 핀다. 꽃이 필 때 은은하게 나는 향기가 일품이다. 꽃은 시들지만 줄기와 일부 잎사귀는 겨울을 견디며 생기를 유지해 살아남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을 넘기는 생기가 약효의 핵심이다.
본경소증은 약효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동은 보라색 줄기에서 하얀 꽃이 피고 하얀 꽃이 다시 노랗게 변한다. 이러한 특징은 혈맥에서 종기가 발생하고 썩은 종기가 허물어져 노란 고름이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렇게 인체 기혈이 병소에서 죽어갈 때 금은화는 병든 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린다.” 동의보감은 귀한 금은화보다는 흔한 인동초 줄기를 모아 끓여 먹는 것이 가난한 자가 종기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약이라고 소개했다.
정조가 종기에 자주 걸린 만큼 종기 치료를 둘러싸고 여러 명의 의사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의료는 ‘열린 의료’였다. 왕을 치료할 때도 숙련된 궁중의사뿐 아니라 뛰어난 의술을 지닌 세간의 명의를 초빙하는 유연한 시스템이었다. 특기할 점은 치료의 기술적인 부분은 의사들이 담당했지만, 치료의 논리적 타당성은 유학자 출신의 대신들이 검증했다는 것이다.
정조 17년, 머리에 난 부스럼이 자라 종기가 됐는데 내의원들이 약을 써도 낫지 않자 피재길이란 의원을 불러 치료를 맡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박’이었다. 일순간 종기가 사라진 것이다. 피재길은 아버지가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이었지만 일찍 세상을 뜬 바람에 기술을 따로 배우진 못했다. 다만 남편을 거들었던 어머니가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 제조법을 알았기에 피재길은 웅담고라는 고약을 만들어 일약 스타가 됐고 마침내 내의원 침의에 올랐다.
이동은 정조의 치질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의사다. ‘이향견문록’과 ‘호산외사’에 따르면 이동은 정식 의사가 아니라 임국서라는 의원의 마부로 들어가 어깨너머로 의술을 배웠다고 전한다. 손톱, 머리카락, 소변, 대변, 침 등을 약재로 사용해 특이한 방식으로 치료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엔 이동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