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종기가 계속되었음에도 가미군자탕 등 위장 기력 돕는 처방 지속돼
소화불량에 신경쇠약 겹쳐
22세부터 25세까지 순조는 소화능력이 떨어지면서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한다. 불면증, 식욕부진, 피로, 정신황홀, 피로, 숨참, 사지무력증으로 고생한다. 한의학은 이런 신경성 위장질환을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나누어 치료한다.
외향성인 사람은 간기울결(肝氣鬱結)로 보고, 내향성인 사람은 심담허겁(心膽虛怯)으로 본다. 내향성인 사람의 증상은 식욕이 없으며 신경이 쓰이는 일, 긴장되는 일이 생기면 밥맛도 없고 소화가 안되며 정서가 불안하고 깜짝 깜짝 잘 놀란다. 꿈을 많이 꾸고 무서움을 잘 타면서 쉽게 어지럽고 자주 구역감이 발생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순조는 내향성의 스타일이었다.
순조가 지속적으로 허약해지면서 위장의 소화력이 떨어지자 가미군자탕 계열의 처방이 이뤄진다. 가미군자탕은 순조 자신이 운명하는 마지막 날까지 복용했던 처방이다.
가미군자탕, 육군자탕, 생위군자탕, 삼령백출산, 승양순기탕 등은 모두 사군자탕이라는 처방을 모토로 그때그때 증상에 맞게 변형한 처방이었다. 순조 14년, 왕의 신뢰를 받던 유의(儒醫) 홍욱호는 왕의 온몸이 불편한 증세는 오로지 위기(胃氣·한의학에서 원기를 이르는 말)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진단하면서 위기를 보충하고 건강하게 만들 것을 재삼 강조한다.
사군자탕은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 4가지로 구성된 약물로 전신이 무력하면서 소화기능이 약하고 자주 설사를 하면서 많이 먹지 못하고 힘이 없는 증상에 사용하는 처방이다.
사군자탕을 푹 달여 대접에 담아놓으면 담백한 마음을 지닌 군자 같다. 달인 듯 달이지 않은 듯 담담한 빛깔이어서 차 한잔 마시는 것 같다. 처음엔 그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힘들지만 한참을 먹고 나면 건강이 개선된 느낌이 오는 것이다. 가득 차야 드러나는 군자인 셈이다. 이런 처방을 꾸준히 한 탓인지 순조는 38세까지 13년 동안은 질병 기록이 없다.
죽는 날까지 가미군자탕 복용
순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사인은 다리 부위의 종기다. 다리 부위에 생긴 염창(臁瘡)으로 짐작된다. 동의보감은 염창을 이렇게 설명한다. “양쪽 다리가 짓물러서 나쁜 냄새가 나고 걸어다니기도 힘든데 이것은 정강이뼈 위에 생긴 것으로 위험한 질병으로 보면서 많이 걷지 말아야 한다”.
순조 14년 11월2일,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을 먼저 지적하기보다는 다리에 약을 붙인 결과로 수포와 붉은 열이 올라오는 것을 호소한다. 11월20일 다리 부위의 종기가 손가락 머리처럼 부풀어올라 고약을 바를 것을 의논한다. 이후 석 달 넘는 기간에 22종이나 되는 많은 고약을 붙이면서 종기를 치료한다.
문제는 똑같은 증상이 순조 34년, 45세 되는 해에 재발한 것이다. 그해 10월28일 가벼운 두통 증세와 함께 대소변이 불순한 증상이 있다고 하여 순조에게 가미정기산이 처방된다.
11월1일 기록을 보면, 종기가 재발해 메밀병으로 만든 고약을 종기에 붙인다. 메밀병은 순조 14년 9월에 사용한 바 있던 고약 종류다. 13일까지 종기 치료 목적으로 소담병자, 촉농고, 투농산 등 고약을 계속 붙이면서 치료했지만 순조의 종기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특기할 점은 종기가 진행됐음에도 탕약은 계속적으로 가미군자탕, 인삼이나 계피가 들어간 가감양위탕, 이공산 등 위장의 기력을 돕는 처방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순조 사망의 직접적 원인은 종기였지만, 그가 한평생 밥맛 떨어지는 인생을 살다갔음을 처방은 보여준다.
이상곤 원장·갑산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