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 그렇게 내달렸던 순간들을 마음 한 켠으로 옮겨놓는다. 『중국의학의 기원』이 마침내 출간된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것에는 야마다 케이지(山田慶兒) 선생이 의료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하였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특히 과학자의 시선에서 한의학이 어떻게 읽혀지고 또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의학 내부의 시선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야마다 선생에게는 동양의학에 대한 동경이나 찬탄, 신비감 등 동양의학을 바라보던 기존의 이미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객관적 사태’로, 전통과학의 한 분야로서 동양의학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한의학에 애정 가득한 사람에게는 몹시 냉정하게 비쳐질 수 있지만, 동시에 한의학의 외부에서는 몹시 객관적인 서술로 읽혀질 것이다.
“한의학은 의학 자체의 존재방식으로 인해 향후 그 지위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러한 시선에서 볼 때, 전통의학이 갖는 존재방식의 특이성에 대한 그의 지적은 매우 날카롭고 정확하며 객관적이다. 그는 현대에 들어 ‘전통과학’ 가운데 ‘전통의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는 없어지거나 현대과학에 통합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그는 이처럼 전통의학만이 살아남은 것을 의학이 지닌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몸은 현대의학만 가지고서는 온전히 파악해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둘째, 의학의 대상은 사람이며, 그 사람이란 사람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 개인’이다.
다시 말해, ‘의사-환자’라는 인간관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의학은 성립 자체가 되지 않으며, 이는 물질을 다루는 여느 과학 분야와는 달리 각각의 개성을 지닌 개체로서의 인간을 다루기 때문에, 의학은 “종종 시대적·사회적·문화적이기까지 하다.” 이에 대해 그는 “의학은 인간에 대한 생물학에 뒷받침된, 사람의 병을 인식하는 과학인 동시에, 방법상의 진보와 더불어 경험의 축적을 통해 풍부해지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며, 게다가 이른바 과학이나 기술을 초월한 인간적 행위를 동반하는 것이다.”라고 요약해 놓았다.
이러한 첫째와 둘째의 존재방식이 결합될 경우 개인에게는 ‘기호’라는 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양방에서 진단이 되지 않지만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환자들 가운데 한의학 치료에 의해 굉장히 호전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러한 경우, 서양의학에서는 판단을 중지해 버리지만 한의사는 한의학의 지식체계 내에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경험한 환자로서는 그 질환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한의학을 선호하는 ‘기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설령 비용발생이 더 커지더라도(사실상은 비용절감이나 고통절감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한의사를 찾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기사화되었던 [양의사들, 결국 힘들면 찾는 것은 ‘한약’]이라는 상황이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의사이거나 한의사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직간접적인 경험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슬람의 유나니 의학이든 인도의 아유르베다든 우리나라의 한의학이든 20세기 들어 새삼 주목을 끌게 되고 오히려 대중화가 진행된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들은 의학의 존재방식 그 자체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해부 관련 대목”
우리가 또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제7장의 해부 관련 대목이다. 이 장에서는 한의학에는 해부가 없다거나 해부라는 것이 매우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일소시켜버린다.
일반인 혹은 한의학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한의학을 매우 모호하거나 신비로운 것들로만 가득할 것이라 여기고, 또 그것 때문에 한의학을 일방적으로 동경하거나 일방적으로 멸시한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자.
且夫人生於天地之間, 六合之內, 此天之高, 地之廣也, 非人力之所度量而至也. 若夫八尺之士, 皮肉在此, 外可度量切循而得也(之), (其)死可解(剖)[部]而視也(之).
또한 사람은 천지 사이의 육합 안에서 살고 있으니, 이러한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는 인력으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저 8척(尺) 신장을 가진 사람은 피육이 여기에 있으니, 겉으로는 측량하고 만질[切循] 수 있고 죽어서는 해부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pp. 466-467. 원문에서 [ ] 안은 『태소』이고 ( ) 안은 『영추』이다
매우 간명하지 않은가? 인체는 측량되어야 하고 그 측량은 살아있는 사람을 만지거나 죽은 사람을 ‘해부’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 야마다 선생은 『내경』에 기록된 아주 상세한 인체에 대한 수치들이 해부가 없이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것이라 보고 있다. 너무 자세할 뿐 아니라 정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우리나라 조선후기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도 기록이 있었지만 문제시되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이규경은 「인신장부골도변증설(人身藏府骨度辨證說)」에서 ‘인신장부골도(人身藏府骨度)’의 내용과 관련하여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2-1666)의 『주제군징(主制群徵)』의 내용을 소개한 뒤, 그 내용이 너무 소략하여 많은 것을 담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해주기 위해 썼던 자료가 바로 『난경』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서양의학 도입과 관련하여 동양에는 당연히 해부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에서 바라보았던 연구자들이 이러한 부분을 놓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야마다 선생은 『내경』에 수록된 해부 관련 기록이 『한서(漢書)』권99「왕망전(王莽傳)」에 보이는 신(新)나라 천봉(天鳳) 3년(AD16)의 기사와 관련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전한과 후한을 잇는 이 시기에 왕손경(王孫慶)을 위시한 사람들을 처형하였고 처형된 사람들로 해부를 하여 신체 각 부위를 일일이 측정하여 기록했다는 내용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해부와 측정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야마다 선생은 이 시기가 최초로 해부가 발생한 때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인체 기관 중 발성 기관에 대해 기록한 「우에무언(憂恚無言)」의 경우 해부 없이는 서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이 글은 그의 시대분류 기준에 의하면 전한 때에 이미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한의학의 먼 과거에 행해진 해부가 해부 자체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해부에 대한 정확한 서술이 기존에 발전하기 시작했던 맥 개념과 결합되어 오늘날 한의사들이 흔히들 쓰고 있는 맥진의 탄탄한 기초가 되었으며, 침법과 결합함으로써 침술이 한층 발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침법에 대한 이론은 『상한잡병론』에 반영됨으로써 진단, 침구, 약물 등의 이론이 통합되기에 이른 것이다. 따져보자면 결국 전한과 후한 시기를 지나면서 발생했던 해부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들이 한의학의 원형을 이루는 핵심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바로 오늘 임상에 나서는 분들은 진맥을 하면서, 침을 놓으면서, 또 한약을 처방하면서 이것이 결국 먼 과거, 야마다 선생이 “오늘날의 해부학자 혹은 자연인류학자의 아득한 선구자”라고 일컬었던 사람들에 힘입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 주셨으면 한다.
“한의계 내부 역량 강화가 필요한 때”
마지막으로 한의계에 당부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90년대 들어 이념논쟁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학문의 방향이 미시적 연구로 급선회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생활사와 결합되어 한의학에 대한 연구가 각광을 받은 것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시작되었다.
시일이 어느 정도 흐르고 한의계 외부 인력들의 역량이 쌓임에 따라 여기저기서 자칭 ‘한의학 전문가’가 쏟아져 나오고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의학의 대중화를 가속화하여 한의학 이미지 제고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한의학이 대중서에 묻혀버리고 한의학의 전문성이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쉬워지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대중화된 그 서적들이 한의학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일반인이 많아지고 그것이 여론이 되어버린다면, 한의학의 운신이 마침내는 좁아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야마다 선생은 나름 객관적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양의학을 재평가해놓았다. 동양의학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 쓴 서적이 치밀한 논증의 결과 그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은, 한의학이 가지는 긍정적 에너지가 무궁함을 암시한다 하겠다.
이제 한의계 내에서 한의계 바깥의 사람들에게 학술적 근거가 탄탄한 서적으로 대중화하는 작업이 남은 것 같다. 역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널리 읽혀지는 것을 바라지만, 이것은 결코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한의계의 고수들께서 이 책을 세밀하게 읽으시고 한의계 내에서 한의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답하는 대안을 마련하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박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