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7-05-22 11:32
제 목
내안의 또 다른 나 ‘내면아이(inner child)’
작성자
코끼리
982
조회수


평소의 의식상태에서 새로운 의식상태로의 이행을 도와주는 대표적인 기법이 억세싱(accessing)이라고 이미 소개한 바가 있듯이 마음챙김 상태는 스스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선의 의식상태이다. 마음챙김 상태에 머물러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중 편안하게 내면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한 격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아이와 만나기도 하는데, 이때의 아이를 ‘내면아이(inner child)’라고 한다. 내 안에 또 ‘작은 나’가 있다. 서른 살이 넘은 성인이지만 한 부분에서는 여전한 어린아이가 있다. 성장을 멈춘 내면아이가 현실에서 영향을 행사하며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흔히 다중인격 장애로 더 알려져 있는 해리성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는 두 개 이상의 다른 인격상태가 따로 분열되어 일상적인 사건, 중요한 개인정보, 외상적 사건을 기억함에 있어 공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내면아이(inner child)는 현재 자신의 성인 신분을 아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기억, 감정, 사고방식, 말의 패턴을 경험하고 있는 의식의 상태이다. 환청(auditory hallucinations)과도 구별되는 데, 환청은 실제로는 아무런 자극도 없는데, ‘소리가 들린다’, ‘욕설이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등을 호소한다. 이것은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가족치료사이며 내면아이치료 전문가 존 브레드쇼(John bradshaw)는 『상처받은 내면아이』에서, 성장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 관계형성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인격장애를 초래하며, 각종 중독 증세를 유발하게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가치체계나 미성숙한 인격체를 ‘상처받은 내면 아이’라고 하였다.  

성인이 되어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은 정신과 진단을 내리지 않더라도 크게 두 부류로 요약된다. 하나는 미해결 경험(missing experience)자로서 어려서부터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것들을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버린 경우, 즉 사랑, 배려, 관심, 인정, 칭찬 등의 이런 것들을 놓쳐버리고 성인이 된 경우이고, 둘째는 트라우마 경험자로서 절대 경험하지 말아야할 것들을 경험하고 성인이 된 경우 즉, 학대, 방임, 방치 등의 아동학대 혹은 성폭력 등의 경험을 하고 성인이 된 경우이다. 두 부류 모두 애착외상(attachment trauma)과 관계가 깊다(12번째 칼럼참조). 애착외상은 고스란히 상처입은 내면아이로 성장을 멈춘 상태로 남아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도 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인생의 무게로 힘들어하고 자기열등, 자기비하에 시달리며 대인관계 형성의 어려움과 갈등을 경험하고 자족(自足)하기 보다 불만, 불면, 불안, 깊은 우울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그 깊은 내면에는 상처입은 내면아이가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A씨의 답답증은 가슴 한가운데 손바닥만하게 각진 붉고 큰 돌덩이이가 묵직하게 짖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신체적으로 포커싱하여 알아챈 것은 어릴 적 엄마로부터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막연한 가슴답답증의 원인을 깨달아가는 과정 중에 6살 내면아이가 등장하게 된다. 내면아이와의 대화 내용을 보자. 
 
“살가운 소리 들어본 적도 없고,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고 느끼는 A씨는 몇 살쯤 되어보이나요?”
“6살 정도요”
“6살 A씨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모양을 하고 있나요?”
“분홍 원피스요. 머리는 뒤로해서 하나로 묶었어요”
‘분홍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고 있는 6살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집 안요. 혼자 있어요“ 
“6살 A씨가 집에 혼자 있구나! 표정을 함 볼 수 있겠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움츠리고 앉아있어요. 울적한 것 같아요” 
“그래. 6살 A가 많이 울적하고 뭔가 외로운 느낌이 드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움츠려서 흐느끼고 있는 거구나?” 
“네 (눈물방울이 더 굵어지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6살 A한테 말을 걸어봐도 될까요?”
“네”
“A야. 혼자 아무도 없이 방안 있는 게 무섭기도 했겠구나.” 
“네 (울음소리가 격해지면서). 밤만 되면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 A가 너무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겠다. 아무도 옆에 없어서 정말 버림받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겠네?”
“네 (계속 흐느껴 운다). 엄마가 왔어요. 근데, 너무 지쳐있어요. 저는 그냥 자는 체하고 있어요. 저를 안아주지도 않아요. 근데,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내가 없었으면 저렇게 늦게까지 일안해도 되실 것 같은데... ” 
“그랬구나. 혼자 외롭고 무섭고 버림받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한번이라도 안아주었으면 했는데, 내가 없었으면 엄마가 안힘들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말도 못했겠구나?”
“네. 엄마가 저렇게 된 게 나 때문 같아요. 저만 없었어도...(계속 눈물)’ 
(중략)    
‘그래요. 이제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30대 후반, 한 아이의 엄마가 된 A씨가 6살 어린 A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 보면 어떨까요?
“네.”
“다가가서 건네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냥 안아주고 싶어요. 꼭~”
“그래요. 성인이 된 A씨가 어린 A를 꼭 껴안아줍니다.”
(껴안으면서 눈물은 계속 더 흘러내린다)
“해주고 싶은 말을 건네줘도 괜찮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렇게 함께 해줄게. 괜찮아”
(하략)
 
‘엄마는 한 번도 날 사랑해준 적 없어’, ‘난 버림받았어’ ‘모든 게 나 때문이야’, ‘나만 없으면 행복할거야’ 이런 표현들은 어린 아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이가 드러내는 감정과 그 시절 그렇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방식은 절대적 공감을 필요로 한다. A씨가 마주한 내면아이 또한 상처로 인해 성장할 수 없었던 어릴 적 감정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것으로 내면아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때야 비로소 안심이 되고, 성인이 된 나는 상처받은 어린 나를 돌보기 시작한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본성적 욕구는 안전과 존중이라는 관계의 장에서 다시금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개인적 성장 뿐 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생태계를 이롭게 한다. 

해맑고 행복한 내면아이가 성인이 되어 힘든 나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치유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유형이 외로운 아이이든, 무서워하는 아이이든, 화가 난 아이이든 어떤 형태이든 결국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을 때 존재는 호흡의 의미를 찾게 된다.
 
삶의 이유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면아이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민족의학신문 칼럼
-강형원교수 / 원광대산본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