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8대 임금 현종은 그 유명한 ‘예송논쟁’으로 재위를 시작했다. 예송논쟁은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의문사로 왕위에 오른 차남 효종과, 효종을 계승한 현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느냐, 인정하느냐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크게 다툰 사건이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서인은 2차례에 걸쳐 정통성 시비를 벌이며 현종을 겁박했다. 소현세자의 막내아들인 이석견의 존재는 그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1차 예송논쟁 당시 한의약에 정통했던 윤선도는 현종을 진찰한 뒤 ‘안색에 열기가 있고 목소리가 탁한 게 몸에 열이 있음이 확실합니다. 옛 처방에 따르면 이는 반드시 화(火)병입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현종은 윤선도가 처방한 청기화담탕을 먹은 뒤 열이 가시고 얼굴이 편안해졌다. 실록에 따르면 이 시기 현종은 가감양격산을 63회나 복용했는데, 청기화담탕과 이 약은 모두 ‘상초(上焦)’에 나는 열에 효과가 좋은 처방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상초란 심장과 폐를 포함하는 가로막 위쪽 부위를 말한다. 동의보감에는 ‘상초에 열이 있으면 눈에 핏발이 서며 붓고 머리와 목이 아프며, 입안과 혀에 헌데가 생긴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현종은 눈병과 함께 목에 멍울과 종기가 생기는 나력, 영류, 핵환을 달고 살았다. 나력, 영류, 핵환은 지금으로 치면 경부림프샘 결핵, 갑상샘종, 갑상샘 결절 등에 해당한다. 갑상샘 질환은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갑상샘은 감정에 반응해 쉽게 붓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서는 신혼 생활을 하는 새색시의 목 굵기를 재 신혼의 만족도를 확인하는 풍습이 있었다. 감정에 반응하는 갑상샘의 특징을 헤아린 지혜였다.
한방에서 갑상샘 질환을 포함해 목의 종기를 치료하는 대표적 약물은 하고초(夏枯草), 즉 꿀풀이다. 현종 또한 상초의 열로 생긴 목의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재위 4년부터 10년까지 하고초환을 복용했다. 하고초는 ‘여름에 꽃 피는 즉시 시드는 풀’이라는 뜻으로 한의학에선 ‘뜨거운 여름에 시드는’ 이 특징을 도양입음(導陽入陰)한다고 하며 몸과 마음의 열을 진정시켜 주는 효험이 있다고 본다. 이런 효험의 연장선에서 갑상샘 질환을 치료한다. 갑상샘 기능항진증의 증상은 실제 몸에 생기는 ‘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땀이 나고 얼굴에 열이 올라 붉어지며 숨이 찬다. 하고초는 갱년기 장애로 인한 열 오르는 증상 치료나 안면홍조에도 특효다.
하고초는 심장의 붉은색과 신장의 검은색이 합해진 보라색을 띠고 있는데, 실제 물(水)로 상징되는 신장의 기운을 돋우고 불(火)로 상징되는 심장의 열을 내리는 수승화강(水昇火降) 작용을 한다. 하고초의 갑상샘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는 필자가 쓴 논문을 비롯한 여러 논문으로 증명된 바 있다. 하고초는 술에 담가서 아홉 번 찌고 말린 뒤 차로 마시는 게 효과가 가장 탁월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말린 풀을 물에 넣어 그냥 차처럼 마셔도 좋다.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