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동원(醫食同源)이란 말이 있다. ‘의약과 음식의 근본은 같다’는 의미로, 쉽게 말하면 질병을 치료하는 데 음식과 약의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과 같은 말이다. 하지만 한의학에선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이라도 내 몸의 상태에 안 맞으면 독이 될 수 있다. 절대 같이 먹어서는 안 되는 상극의 음식과 질병의 궁합이 있다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문종의 죽음이 상극의 음식 궁합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문종은 종기 때문에 고생하다 재위 2년 만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당시 문종의 종기를 치료한 어의 전순의는 ‘식료찬요’ ‘의방유취’를 편찬한 당대 최고의 명의다. 그는 식료찬요 서문에서 ‘세상을 사는 데 음식이 으뜸이고 약물이 그 다음이다. 옛 선조들은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고 음식으로 치료하지 못하면 약으로 치료한다’며 식치(食治)를 강조했다.
이처럼 의식동원의 조종으로 추앙받는 그가 종기와는 상극 음식인 꿩고기를 문종의 수라에 올렸다는 점을 들어 ‘암살설’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꿩은 닭과 비슷해 야계(野鷄)라고 불리지만 닭고기보다 열이 더 많은 음식이다. 심지어 쪄서 요리하면 색깔이 붉게 변해 ‘불(火)의 음식’으로 불린다.
종기는 본래 혈에 열이 심해 생기는 ‘화(火)의 질병’이다. 특히 꿩고기를 봄에 먹으면 치질과 부스럼, 습진을 악화시킨다. 문종이 죽기 전 허리와 등에 생긴 심한 종기뿐 아니라 치질로도 고생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난 데 부채질한 셈이다.
결국 문종이 꿩고기를 먹고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대소신료들은 임금의 병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는 음식을 올린 책임을 물어 전순의를 어의에서 전의감 청지기로 강등시켰다. 가까스로 처형을 면하고 잠시 관직에서 물러난 그가 세조의 즉위와 함께 공신이 돼 화려하게 부활한 사실도 문종의 암살 의혹을 부추기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의식동원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한약과 함께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많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닭고기, 돼지고기, 술, 밀가루 음식과 생선회, 개고기 등이다. 경종의 독살설로 유명한 게장과 생감은 둘 다 찬 음식으로 함께 먹으면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키는 냉성 상극 음식이다. 구기자와 유제품도 상극의 음식이다. 차로도 마시는 구기자의 별명은 지선(地仙)으로, 한방에선 피로를 해소하고 정기를 보충하며 머리를 검게 하고 눈을 밝히는 약재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우유나 유제품이 귀한 음식이라 구기자와 같이 먹을 일이 없었지만 우유 마시는 일이 흔한 요즘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임신부에게 금기시되는 사향이나 사향이 들어간 한약을 먹을 때는 마늘을 먹지 말아야 한다. 요즘 보약으로 각광받고 있는 공진단도 마늘과 함께 먹으면 약효가 거의 없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공진단의 주성분 중 하나가 사향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