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이 자신이 먹는 것조차 아까워했던 명약이 있다. 바로 경옥고(瓊玉膏)다. 심지어 인조는 자신의 목숨 줄이라 여긴 명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것조차 아까워했다. 인조 3년 사신을 맞은 영접도감은 “경옥고 가운데 작은 항아리 하나만 주고 큰 항아리는 (임금의) 말이 있으면 주겠다”고 말했다.
정조는 자신이 경옥고를 먹는 것을 ‘외람된’ 행위라고까지 표현한다. 왕의 일기였던 일성록(정조 20년)에는 경옥고에 얽힌 일화가 나온다. 정조가 신하들에게 어머니 혜경궁이 경옥고를 먹고 큰 효험을 봤다고 말하자 신하들은 “경옥고는 오히려 왕이 드시면 진실로 좋을 것이다.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드시면 가장 좋다”며 경옥고 복용을 강력하게 권한다. 하지만 정조는 “시험 삼아 내가 몇 차례 복용해 보았는데 갈증 해소에 큰 효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약을 내가 어찌 외람되이 먹을 수 있겠는가”라며 거절했다.
경옥고의 ‘경(瓊)’은 ‘아름답다’ ‘붉다’의 뜻이며 옥(玉)은 구슬을, 고(膏)는 장기간 고아서 끈끈해진 액상의 약물을 뜻한다. 직역을 하면 ‘붉은 구슬 같은 고약’이란 뜻. 이때 붉음은 생명을, 옥은 옥액을 의미하니 의역하면 ‘옥구슬처럼 소중한 생명의 물질’이란 의미가 된다.
경옥고의 이름은 옛날 중국의 황제가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오는 꿀 같은 옥액을 늘 먹고 영생을 얻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도교의 최고 경전 황정경을 보면 그 해석이 좀 더 구체적이다. 경은 경실(瓊室) 즉, 뇌에 해당한다. 옥은 옥정, 옥액이라고도 하는데 신장에 간직한 샘으로, 현대적으로 보면 부교감신경과 관련된다. 동의보감에는 ‘전정(塡精), 보수(補髓)하여 모발을 검게 하고 치아를 소생시키며 만성기침과 허약을 치료한다’고 효험을 적고 있다.
경옥고는 지황과 꿀, 인삼, 복령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때 지황은 가장 핵심적인 약물이다. 지황은 한번 심으면 땅을 메마르게 한다. 지황을 심은 땅은 거의 황무지로 변해 십 년이 지나야 다시 기름지게 된다. 그래서 같은 땅에 연작한 지황은 맛이 쓰고 메말라서 약으로 쓸 수 없다. 지황으로 술을 만들어 익을 무렵 지황을 꺼내 보면 겉모습은 여전하지만 속은 비어서 기름이 전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수세미처럼 실로 얽혀 있을 뿐이다. 지황은 뼛속에 기름을 채우는 게 주된 효능인데 뼈와 근육, 혈액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꿀은 꽃의 정화(精華)로, 끈끈한 액체다. 오장에 들어가서 윤기를 주고 매끄럽게 만드는 데 특별한 효능이 있다.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한 힘으로 내부를 정화한다. 인삼은 알려진 것과 같이 양적인 작용이 강하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기를 튼튼하게 하여 음식물을 통한 후천적 작용을 배양하며 축적된 영양을 내부로 이끌어 저장 동화하여 선천적인 정기를 돕도록 한다.
경옥고를 만드는 작업은 아주 정성스럽다. 먼저 생지황 즙을 꿀과 같이 끓여서 비단 천에 걸러내고 인삼 백복령을 가루 내어 골고루 섞는다. 여기에서 각자의 노하우에 따라 침향, 맥문동 등의 약물을 넣는 경우도 있다. 뽕나무로 3일 밤낮을 끓이는데 솥물이 줄어들면 물을 보충해야 한다. 1회 한두 숟가락씩 따뜻한 술과 함께 복용하거나 물과 함께 끓여서 따뜻하게 해 복용한다. 왕들도 아껴 먹던 경옥고를 흔히 먹을 수 있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그들보다 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