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는 한자로 ‘鰍魚(추어)’와 ‘추魚(추어)’ 두 가지 모두를 쓴다. 전자는 가을(秋)에 살이 올라 통통해지는 물고기(魚)라는 뜻이고, 후자는 맛과 약효가 워낙 뛰어나 물고기(魚)의 ‘추장(酋·우두머리)’이라는 의미다. 엄청난 활동성 때문에 예부터 ‘물 흐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사용돼왔다. 승정원일기에도 ‘어쩌다 득세해 날뛰는 소인배’로 비유했다. 하지만 그 약효나 맛은 조선의 임금이 간염 치료제로 쓸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약성으로는 논바닥 흙 속에 숨어 사는 미꾸라지를 따라갈 자가 없다. 그중에서도 추수할 무렵 통통하게 살을 찌운 논 미꾸라지가 최상품이다. 흙 니(泥)자를 붙여 ‘이추(泥鰍)’라고도 하는데, 실제 배에 누렇게 흙색이 밴 미꾸라지는 맛도 좋고 약성도 최고다. 유명한 추어탕 집들 중에선 가을 미꾸라지만 미리 구입했다 쓰고 여름철에는 장사를 아예 쉬어버리는 곳도 있다.
미꾸라지는 그 이름처럼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많다. 점액은 인체의 면역기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준다. 예부터 강아지의 건강상태는 코의 촉촉함으로 파악했다. 사람이나 개나 신체를 공격하는 가장 큰 적은 바이러스나 세균인데, 점액은 코 속으로 들어오는 병원체를 잡아채 리소좀이라는 효소로 분해해 버린다. 적들로부터 신체를 방어하는 1차 면역시스템이 바로 점액인 셈.
미꾸라지는 특히 남성에게 좋은 약재다. 중국의 약학서 ‘본초강목’은 ‘미꾸라지가 양사불기(陽事不起)를 개선하고 술을 깨게 하며 소갈증을 없앤다’고 설명했다. 양사불기는 요즘 말로 발기불능 증상으로, 본초강목은 미꾸라지가 남자의 스태미나 증진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술을 깨게 하는 간 보호 효과와 관련해선 미꾸라지가 급성간염에도 효과가 크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예부터 미꾸라지는 간염 증상인 황달을 치료하는 음식으로 꾸준히 사용돼 왔는데, ‘미꾸라지 두부’ 요리가 대표적이다. ‘식료본초’에 소개된 이 요리는 물에 넣고 함께 끓이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으면서 완성된다.
실제 숙종은 악화된 간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미꾸라지를 복용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숙종은 왕위에 오른 다음 해(1675년)부터 간염 증상인 급성황달에 시달렸다. ‘갑자기 얼굴과 눈이 누런색으로 변하자 의관들은 황달 증세로 진단하면서 시령탕을 처방했는데 일주일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9월 25일) 하지만 잠복해 있던 간염 바이러스는 평생 숙종의 간을 괴롭혔다. 말년에는 간경화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재위 40년(1714년) 승정원일기에는 어의들이 미꾸라지를 처방한 기록이 남아있다. ‘간경화로 인한 복수 증상과 부종을 치료하기 위해 미꾸라지를 기름종이에 싸 목으로 꿀꺽 넘기거나, 가늘게 썰어 회로 복용하는 처방을 임금께 추천했다.’
미꾸라지는 당뇨 등으로 인해 항상 목이 마른 소갈증에도 좋다. 세종대왕 때 편찬된 동양 최대의 의학사전 ‘의방유취’에는 ‘말린 미꾸라지와 연잎을 같은 양으로 가루 내 먹으면 소갈증에 큰 효험을 볼 수 있다’고 나온다. 추어탕이 가을에 제철 음식으로 각광받는 것은 살이 오른 미꾸라지가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기운을 돋우기 때문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의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