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는 “눈이 멀어지면 사물과 멀어지고 귀가 멀면 사람과 멀어진다”고 했다.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어 청력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일까. 이명과 난청에 시달렸던 노년의 영조는 신하들과의 소통에 늘 힘들어했다. 심지어 실록에는 ‘고통이 극심하다(極苦)’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영조를 정말 괴롭힌 증상은 귀가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색증(耳塞症)이었다. 이색증은 귀가 막히면서 뇌의 한쪽 부분이 마비되는 듯한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어제도 나는 닭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잠이 들었다. … 귀가 막혀서 답답하다.” 재위 48년 영조는 귀가 막히는 불쾌감이 갈수록 심해져 불면의 밤을 보낸다고 호소한다.
영조의 부친인 숙종의 세 번째 부인이자 영조 당시 대비였던 인원왕후 또한 귀가 막히는 듯한 난청으로 고생했다. 어린 시절 귀지를 파내 귀앓이 증상을 개선한 경험이 있던 영조는 대비에게 “귀지를 제거하면 난청이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조언한다. 그러자 의관 정문항이 “귀지를 곡침(휘어진 침)으로 파내서 고친 경험이 많다”고 자랑한다. 당시 정문항이 언급한 곡침은 현대의학에서 귀지 제거에 쓰는 의학용 집게(forceps)와 유사하다. 당시 귓속 이물질을 제거에는 납지구(蠟紙灸)도 쓰였는데, 귀에 한지를 말아 넣고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귀가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에 대해 현대의학은 귀와 코 사이를 연결하는 이관(耳管)의 개폐가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관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식을 삼키면 열리는데, 이때 공기가 교류하면서 귀 내외부의 공기압이 같아지게 된다. 고막은 귀 내외부의 공기압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잘 진동한다. 음을 알아듣기가 그만큼 쉽다는 얘기다. 거꾸로 말하면 이관의 개폐에 문제가 생겨 계속 닫혀 있거나 계속 열려 있으면 공기압의 균형이 깨지면서 음을 제대로 못 듣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이관이 계속 닫혀 아예 막혀버리는 증상을 이관협착증, 계속 열려 있는 상태를 이관개방증이라 한다.
이관협착증, 즉 이관이 막혀버리는 대표적 원인은 코와 목의 염증으로, 비염이나 인후염이 이관으로 퍼져 염증이 이관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 외에 오랜 비행, 높은 산 등산, 오래 묵은 귀지, 어지럼을 동반하는 메니에르 증후군, 과로 등 이관협착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동의보감에서는 귀가 막히는 것을 어지럼과 연관해 풀이한다. ‘오장(五臟)의 기(氣)가 궐역(厥逆)하면 귀가 꽉 막혀(비塞) 잘 들리지 않는데, 이때 어지러운 증상을 동반한다.’ 여기서 궐역은 혈맥이 정상적으로 돌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 말로 하면 과로나 스트레스가 극심해 진이 빠진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중국 청나라 때 약물학서인 ‘본경소증’은 귀가 막히는 증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신장의 힘이 약해진 때문이라고 지목한다. 따라서 신장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보신(補腎)을 하면 귀 막힘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장의 기운을 올려 귀 막힘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은 많다. 신장에 좋은 산수유나 오미자를 차로 마셔도 좋고, 흰 소금을 뜨겁게 볶은 후 여러 겹의 비단으로 싸 귀 주변을 찜질해도 효험을 볼 수 있다. 안쪽 발목 복숭아뼈 주위에 있는 태계혈(太谿穴)을 탁구공이나 골프공으로 자극하는 것도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