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脾胃)가 상한다’거나 ‘비위를 맞춘다’는 옛말이 있다. 비위는 의학적으로 지라와 위를 뜻한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옛날부터 비위, 즉 소화기의 건강이 마음의 상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봤다. 실제 위벽에는 무수한 신경 네트워크가 깔려 있다. 스트레스는 위벽의 모세혈관을 수축시켜 혈액 흐름을 나쁘게 하고 위의 운동기능을 저하시켜 소화능력을 떨어뜨린다. 위의 운동기능이 떨어지면 음식물이 위장에 오래 남아 있게 되고, 이는 식욕 부진이나 복부 팽만감의 이유가 된다.
조선 최고의 장수 대왕 영조도 왕위 승계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즉위 후부터 심각한 체증에 시달렸다. 영조의 스트레스는 기록에도 잘 나타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다시는 왕가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 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다. 경종 형님의 지극한 우애가 아니면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있었겠느냐(영조 37년).” 경종의 능을 찾은 영조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엎드려 몇 시간이나 일어서지 않았다 한다. 즉위 때까지 얼마나 큰 위험에 직면하고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조의 체증은 즉위 초부터 극심했다. 영조 2년 어의 권성징은 영조가 밥맛을 잃자 그 원인을 심각한 체증에서 찾았다. 영조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체증은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밥을 먹을 것 같아서 숟가락을 들었으나 곧 밥이 먹기 싫고 체한 듯이 속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영조의 체증은 재위 11년이 되면서 적취(積聚) 같은 딱딱한 형체가 배에서 만져 질만큼 심각해졌다. 긴장한 어의들이 내린 처방은 의외로 간단했다. 소식과 담백한 식사. 섭생 처방을 잘 지켜서인지 영조의 소화불량 증상은 즉위 18년이 되자 스스로 “체증이 거의 없다”고 자신할 정도까지 호전됐다. 영조는 체증을 치료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고 소식한 식습관 개선’을 꼽았다. 생강차와 작설차를 틈틈이 마신 것도 그의 소화력을 증진시켰다.
체증은 식상증(食傷症)으로 불린다. 동의보감은 ‘식상증은 음식이 소화되어 내려가지 않고 명치끝에 머물러 발생한다. 배가 불러오고 답답하며 음식을 싫어하거나 먹지 못하고 신트림을 하며 냄새나는 방귀가 나온다. 한의학은 소화 작용을 부숙수곡(腐熟水穀)으로 보았다. 부(腐)는 삭이는 작용이고 숙(熟)은 찌는 작용이다. 건강한 사람들의 구토물을 보면 음식이 모두 삭고 쪄져 뭉글뭉글한 상태다. 부숙수곡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속이 따뜻하고 온기가 있어야 한다. 동의보감은 이런 원리를 솥에 비유했다. ‘솥에 쌀을 넣고 불을 때지 않으면 쌀이 익지 않는다. 단전의 불길이 위를 데워야 음식이 소화된다.’ 영조는 부숙수곡을 위해 찬 음식을 줄이고 복대를 해 배를 따뜻하게 했다. 복대 속에는 뜨거운 기운을 가진 쑥을 넣었다. 체증에 도움이 되는 경혈은 소부다. 손바닥 4, 5지 사이 손금 부위를 눌러주거나 만지면 체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천적 소화불량증이 있었던 영조가 왕위 계승 과정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장수 대왕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는 하나다. 자기 몸의 단점을 알고 끊임없이 조심하고 보강하며 치료에 힘쓴 때문이었다. 노력이 천재성을 이기는 것은 건강에도 예외가 아니다.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