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어지럼증을 한번 경험한 이들은 언제 어디서 증상이 재발할까 불안하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몰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심각한 질환인데 의사가 알아주지 않는다’며 닥터 쇼핑을 하거나, 심한 경우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심으로 대수롭지 않은 증상에도 응급실로 직행하는 이들도 있다.
율곡 이이는 어지럼증 때문에 병조판서 직을 탄핵 당한 적이 있다. 연려실기술은 그 자초지종을 이렇게 말한다. “국경에 변고가 생기자 선조가 갑자기 선생을 불렀다. 평소 현훈증(眩暈症·어지럼증)이 있었는데 그간의 노력과 피로로 인해 증세가 심해졌다. 병중에 억지로 명을 받들어 나가다 병이 심하여 뵙지 못하였다.” 삼사가 율곡을 탄핵한 죄목은 “임금을 업신여겼다”는 것. 심한 어지럼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등청을 못한 사실을 ‘임금을 업신여긴 죄’로 둔갑시켰다.
각종 기록상 나타난 율곡의 성격은 ‘쾌직(快直)’이었다. 급하고 직설적이라는 말. 이 때문일까. 그의 주변엔 적이 많았다. 그로부터 공박을 받은 이가 워낙 많아, 이들이 합세해 율곡을 공격해도 말리지 않고 도리어 돕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 임금 중 성격이 급하기로 소문난 이는 숙종이다. 숙종 또한 어지럼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 “내가 세자 적부터 이미 화증(火症)이 있었는데, 거기다 성미가 느긋하지 못하여 일이 앞에 있으면 버려두지를 못하니라. 근래에는 현기증이 발작하면 수레나 배 위에 있는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도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했다. 그의 비문에는 “이제는 맹렬한 분노가 더 이상 그의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리라. 나그네여, 떠나시오”라고 쓰여 있다. 스위프트가 앓은 질병은 메니에르증후군이었다. 의학자들은 이 질환을 귓속에 생기는 고혈압이라고도 부른다. 조직학적 병명은 특발성 내림프수종으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림프액이 귓속에 고여 내부 압력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전정기관, 달팽이관 연결 부위의 압력 상승으로 이어져 청력이 급감하고 이명이 생기며 평형감각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메니에르증후군에 가장 많이 쓰는 일반적인 치료제는 이뇨제다. 귓속에 고인 림프액을 소변으로 배출해 압력을 낮추는 원리다. 특히 저염식이 강조된다. 짜게 먹어 혈중 염분의 농도가 상승하면 림프액이 많아져 귓속의 압력이 다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메니에르증후군 치료에 저염식을 쓰기 시작한 것도 스위프트의 치료 사례에서 비롯됐다.
동양에서의 치료법도 원리에선 서양과 차이가 없다. 숙종의 어지럼증에 쓰인 처방은, 이뇨제 택사(澤瀉·사진)가 함유됐기 때문이다. 실록에도 “숙종의 현기증 발작이 잦아지자 택사를 가미한 처방으로 치료했다”고 쓰여 있다. 현대의학도 스트레스나 과로가 쌓이면 시상하부가 항이뇨호르몬을 과다 분비해 내이(內耳)에서 현기증과 이명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숙종이나 율곡, 스위프트처럼 책임감과 경쟁심이 강하며 열정적인 이들은 일을 끌어안고 식사를 거르거나 수면 시간을 줄이면서 몸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자기 몸이 보내는 경고의 언어를 잘 알아채는 지혜가 그 어느 시기보다 필요한 때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