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나 허리, 등, 무릎 같은 신체의 특정 부분이나 전신을 파고드는 냉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냉증’이라고 부른다, 냉증이 있는 사람들은 여름에도 두꺼운 양말을 신거나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는 것을 싫어하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는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금, 냉증 환자들은 요즘 같은 추운 겨울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력도 함께 떨어지기 때문이다.
변변한 방한 장비가 없었던 조선시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임금의 최고 하사품은 귀마개 이엄(耳掩)이었다. 양반은 담비류 모피로 만든 것을, 서민은 쥐털로 만든 이엄을 썼다. 귀마개는 방한용을 넘어 패션 핫 아이템이었다. 세종대왕의 큰아들인 세자 문종은 귀마개를 도둑맞는 일까지 있었다. 범인은 영의정 황희의 서자였던 황중생. 황희는 그 후 아들의 이름을 족보에서 파내고, 성을 조씨로 바꿔버렸다. 냉증으로 관절 마디마디가 아팠던 세종대왕은 “술은 냉증을 치료하고 기맥을 통하게 한다. 술을 드시지 않아 병이 커질까 두렵다”라는 신하들의 약술 권유를 끝내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종이 왕위에 오르고 10년이 되던 겨울, 중국이 요청한 군대의 파병회의 석상에서 “지금 혹독하게 춥지만 나는 차마 이엄을 착용할 수 없다.” 왕으로서 동토의 사지로 백성들을 몰아넣은 죄스러움을 왕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조는 귀마개 마니아였다. 심지어 여름에도 귀마개를 하고 다녔다. 인조 21년 7월 “여름 동안 발이 차가운 증세가 가끔 나타났고 … 최근에는 두 귀도 몹시 차서 오늘부터는 이엄을 써서 한기를 막고 있다.” 인조 27년 4월 중순 김자점은 “날씨가 한창 따뜻한데 아직도 이엄을 쓰고 계시니, 추위를 견딜 수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겪은 추위 트라우마 때문인지 인조는 냉기를 좀체 견디지 못했다.
위장이 약한 사람은 추위에 약하다. 영조는 평소 소화 능력이 떨어져 복통을 자주 앓았다. 재위 10년 차가 되면서 현기증과 수족냉증이 자주 재발하자 어의들은 “위장의 기운이 화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런 모습을 잘 묘사했는데 영조는 날씨가 추워지면 손발을 옷 속으로 감추면서 “늘 손발에 냉증(冷症)이 있어 그렇다”고 변명했다.
여성은 냉증에 특히 취약하다. 영조 26년 세자빈이 임신해 손발이 차가워지자 임금은 친히 치료와 조리를 지시했다. 여성은 자궁이나 난소 등 장기에 혈액이 몰려 전신에 말초 혈액순환 장애가 생기면서 손발이 쉽게 차가워지는데 임신 상태에선 더욱 발생하기 쉽다.
한의학은 냉증을 원인에 따라 달리 치료한다. 영조와 같이 식욕이 없고, 배가 아프거나 권태감이 잦은 경우는 기허(氣虛) 증상이므로 평소 인삼, 생강, 계피를 차로 복용하면 좋다. 인조처럼 발이 시리거나 다리가 차가워지거나 저녁에 소변이 잦으면 양허(陽虛)로 배꼽 밑에 위치한 보일러인 단전의 기능이 약해졌다고 본다. 보양을 위주로 한 부자나 계피, 양고기 등이 도움이 된다. 여성은 혈허(血虛) 증상이 많다. 안색이 나쁘고 윤기가 없으며 현기증이나 두근거림 증상이 생기면서 손발이 차가워지거나 아랫배가 찬 경우가 많다. 당귀차나 대추차 등을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