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름날 시골 연못은 가장 훌륭한 놀이터이자 수영장이었다.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부모님의 ‘물 조심’ 엄명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여름 수영 놀이의 가장 큰 적은 종아리 쥐였다. 입술이 파래질 정도의 산골 찬물에서 몇 시간씩 수영을 하다 보면 과로한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마비와 통증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자칫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종아리 근육 경련은 과도한 운동, 전해질 부족, 허리의 신경 압박, 하체 근육 위축 등의 이유로 다리 근육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 대개의 경우 과도한 운동으로 인한 근육 피로 때문에 발생하지만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쥐는 노화로 인해 배가 나오고 팔 다리 근육이 위축돼 생기는 하지 부실이 가장 큰 원인이 된다. 특히 밤에 잠을 자다가 생기는 다리 쥐는 근육 위축에 의한 하지 부실과 관련이 크다.
조선 최장수 임금인 선조도 다리 쥐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특히 임진왜란이 끝난 후 다리에 이상증상을 자주 호소한다. 전란으로 인해 몸이 피폐해진 선조는 재위 29년 의관들에게 “두 팔은 삼대처럼 뻣뻣하고 두 다리는 잘 펴지지 않아 사지(四肢)와 백해(百骸)가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고 호소한다. 증세는 계속 이어지다 재위 31년에는 다리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허리 통증은 조금 나아졌으나 근골이 몹시 무거운 듯하고 다리 힘이 약해져 똑바로 설 수가 없다.” 이때 의관들이 선조의 다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꺼내 든 비방이 바로 모과였다.
숙종도 다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모과를 처방받았다. 재위 36년 다리에 힘이 없고 걷기 힘들어지자 종아리 부위에 직접 모과를 죽처럼 으깨어 만들어 붙이는 방법으로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조선시대 모과는 다리의 쥐 증상을 줄이거나 없애는 치료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모과는 위장의 소화기능을 도와주는 효능도 크다. 늘 소화불량을 앓던 선조가 입맛을 잃자 백사 이항복은 삼령백출산에 모과를 넣은 처방을 내기도 했다. 모과의 신맛은 사과산을 비롯한 유기산인데 소화효소 분비를 도와준다. 모과는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진정시켜 목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능도 있다. 평소 목의 통증과 가래로 고생하던 광해군은 “목의 가래를 없애기 위해 모과를 장복하고 있는데 지방에서의 진상이 끊겼으니 파발을 띄워 빨리 보내라고 하라”고 재촉할 정도였다.
중국의 한의서 ‘본경소증’은 “모과의 신맛은 혈액을 모아 근육 경련을 풀고 위장에 진액을 모아 소화를 도우며, 목에 진액을 모아 가래를 씻어내는 효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모과는 못났고 먹기도 힘들다. 반면 향기와 약효는 과일 중 최고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자신의 가치를 가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소변을 농축시키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신장 질환이 있거나 변비가 있는 분들은 장복을 삼가야 한다. 가을에 익은 열매를 따서 5분 동안 물에 끓인 다음 껍질에 주름이 생길 때까지 햇볕에 말려 사용해야 약효가 크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동아일보 이상곤의 실록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