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0-06-28 11:16
제 목
수 궁 사(守宮砂)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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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궁 사(守宮砂)
“수궁사처럼 한의학의 신비는 신비가 아니라 바로 끈질긴 자연관찰의 결과다. 한약에 대한 접근방식은 색깔과 생태적 특성을 중점적으로 관찰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약물로 이용한다.”

중국의 고전 ‘박물지’에 보면 처녀성을 증명하는 수궁사의 기록이 있다. “수궁사의 재료가 되는 것은 도마뱀이다. 도마뱀을 그릇 속에 넣어 기르면서 주사를 먹이게 되면 도마뱀의 몸이 온통 붉은 색이 된다. 계속 먹여서 일곱근이 되었을 때 아주 여러번 절구질을 해서 여자의 지체에 바르면 죽을 때까지 색깔이 변하지 않게 된다. 오직 성관계를 가질 때만 없어지기 때문에 자궁을 지킨다 해서 수궁(守宮)이라고 한다. 한무제가 시험해 보니 과연 효험이 있었다.”

수궁사는 시대의 허망한 잔재다. 그러나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정신은 동양적 사유의 길을 보여준다. 바로 요즘 유행하는 천연약물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예를 들면 특정 질환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천연약물들을 실험실에서 모두 스크린할 수는 없다. 질병과 약물의 상관관계를 보는 관점이 있어야만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한의학적 사유는 바로 그런 관점을 익혀가는 것이다. 수궁사도 흥미 이면에 천연물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보는 재미가 있다.

도마뱀은 본래 색깔을 잘 바꾸는 동물이다. 주역의 ‘易’자는 바로 도마뱀을 형상화한 글자다. 동양철학의 기본전제는 변화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다”와 가장 부합하는 동물이다. 하루 열두차례씩 때의 변화에 맞추어 색깔이 변한다는 카멜레온의 속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마뱀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수궁사에 부합하는 것은 석척과 언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중약대사전에 “석척은 산의 돌틈에 살고 뱀과 비슷하며 네 개의 다리가 있다. 길이는 20~30cm정도이며 잔비늘이 있고 벽색이며 오색이 갖추어진 수컷이 약용으로 쓰인다. 언전은 울타리의 벽을 즐겨 오르는 종류다. 형태는 작고 검으며 물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지만 아직 사람을 물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중약대사전은 기록하고 있다.

모든 약물에는 理와 情이 있다. 이는 변치 않는 정체성으로 내재된 속성이고 정은 외부의 시간과 장소에 따라 드러나 변화하는 관용성이다. 도마뱀은 외부의 카멜레온적 속성과 달리 내부는 변치 않는 심성을 지닌 짐승이다. 일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적은 도마뱀의 사랑이라는 이범선님의 수필은 그같은 속성을 잘 설명한다.

일본의 집 벽은 오가베라 하여 나무로 얼기설기 되어 양쪽에서 흙을 바르는데 속이 비어 있다. 수리하기 위하여 벽을 뜯다 보니까 그 속에 도마뱀이 갇혀 있는데 꼬리에 긴 못이 박혀 꼼짝도 못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조사해 보니 그것도 십여년전 그 집을 지을 때 벽을 만들며 박은 못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았나 싶어 관찰하니 어디서 딴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기어오더라는 것. 벽 속에 꼬리가 박힌 도마뱀을 위해 또 한 마리의 도마뱀이 십년 넘게 먹이를 물어 나르는 숭고한 사랑을 보였다는 것이다. 도마뱀의 외부인 카멜레온적 속성과 내부인 변치 않는 심성은 물과 닮아 있다. 물은 외부에 따라 모양을 쉽게 바꾼다. 둥근 모양의 그릇에는 둥글게, 네모난 그릇에는 네모로 다양하게 형태를 바꾸지만 물은 물일 뿐이라는 정체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을 만나면 달라진다. 증기로 바뀌여 날아가며 완전히 변화한다. 물은 한의학에서 음이고 여성을 상징한다. 불은 양이며 남성을 상징한다. 바로 도마뱀의 음적 속성을 파악하여 양적인 남성의 기운을 수용할 때 변화하는 속성을 약물에 응용한 것이다.

도마뱀에게 먹이는 주사는 붉은 색깔의 수은성 광물이다. 수은은 외부는 붉은 색깔로 양적이지만 내부의 수은은 음적이다. 수은은 가장 여성적인 물질로 남자의 성기를 갖다대면 움추린다는 속성이 전해질 정도다. 생물은 변화한다. 내부와 외부도 교류하며 움직인다. 도마뱀이 주사를 계속 먹으면 외부의 변화하는 속성은 붉은 양으로 집중되어 고정되고 내부의 변하지 않는 속성은 음적인 수은과 더불어 더욱 음적으로 변하여 고정된다. 수궁사 제조법은 음적으로 다져진 내부가 양적인 외부 자극이 들어오면 색깔을 바꾼다는 치밀한 음양오행의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수궁사 처럼 한의학의 신비는 신비가 아니라 바로 끈질긴 자연관찰의 결과다.

한약에 대한 접근방식은 색깔과 생태적 특성을 중점적으로 관찰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약물로 이용한다. 예를 들면 건조한 지역에 사는 식물은 습기를 잘 간직해야 살고 습하고 물기가 있는 지역의 식물은 습기를 잘 배설해야 산다. 건조한 지역에 사는 알로에와 선인장은 건조해서 생기는 피부건조증, 변비, 체액 감소에 쓰고 물가에 사는 부들과 택사는 부종이나 소변 이상에 사용한다.

약물의 생태적 특성을 일일이 조사할 수 없기에 단순화하여 표기한 것이 음양오행이다. 모든 다양성은 단순성이 바탕이다. 인체가 복잡하지만 A, G, C, T라는 네 가지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컴퓨터의 기능이 다양하지만 0과 1이라는 단순한 조합에 의해 운용된다. 음양오행의 접근방식도 다양성을 단순화하여 추상화한 것이지 신비가 아니다. 그 의미와 분질을 되짚어야만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을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 
 
이상곤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