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0-06-28 11:17
제 목
소현세자의 죽음..추노(追奴)로 다시 살펴보자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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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追奴)…소현세자의 죽음

“소현세자가 걸린 학질은 무서운 병일까? 학질은 조선시대에 아주 흔한 병으로 학질을 앓고 나야 사람이 된다고 할 정도였다.
하루걸이 질병이라고도 한다. 치사율은 소아를 제외하면 별로 높지 않았고 자연 치유가 되었다.”

드라마 추노에서 거론되는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독살론이다. 이 사실은 종실인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가 세자의 염습에 참가했다가 발설한 것을 바탕으로 기록한 것이다.

인조 23년 6월27일의 기록이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돼 병을 얻었고 병이 난지 수일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 나옴으로 검은 멱목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공식적인 기록도 그렇지만 더욱 의혹의 중심에 선 것은 소현세자의 진료를 맡은 의관 이형익이다. 27일 기록에서 세자내외와 조소용이 알력을 벌인 점을 지적하였다. “왕의 행희 조소용이 세자 및 세자빈과 사이가 좋지 않아 밤낮으로 왕 앞에서 세자를 헐뜯었다. 대역부도의 행위 및 저주를 했다고 참소했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비록 행간의 뜻이지만 조소용과 의관 이형익과의 긴밀한 관계를 암시했다. 실록은 조소용의 어미와 이형익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이형익이 조소용의 어미집에 치료를 위해 왕래하였는데 인하여 추잡한 소문이 있었다.”  조소용, 이형익과의 관계를 의심한 것이다.

이형익은 정식 의관이 아니다. 충청도 대흥지역에서 활약한 침의인데 인조 11년에 임시로 채용되었다. 실록을 편찬한 사관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흥땅에 이형익이란 자가 있어 약간 침법을 알아 사기를 다스린다고 세상 사람을 현혹했다”라고 말하며 능력을 평가절하한다.

특히 이형익의 진찰능력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말을 적는다. “왕세자가 앓아 오던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아서 이형익에게 진맥하라고 하자 이형익이 ‘이 병은 사기이므로 침을 놓아야한다’라고 주장한다. 인조가 세자에게 침을 맞으라고 하자 ‘이것은 감기인데 무슨 사질입니까’라고 극력 거절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바로 나았다”라고 비웃는다.

홍문관에서는 나름대로의 검증결과까지 열거하며 이형익에게 치료받지 말 것을 주장한다. “이형익은 스스로 괴이한 방법과 신통한 비결로 사람들에게 자랑한지가 오래되었지만 사대부들 중에 그의 침술을 쓰는 자들이 효험을 본 사람은 없고 더러는 해가 따랐다”라고 비판하였다. 심지어는 침자리를 잘못잡는 일까지 생겼다. 인조 11년 10월7일 “이형익에게 번침 치료를 자주 받았는데 혈이 좌우에 차이가 있어 확인하였다” 라고 말하여 이형익의 의술에 의문을 표현했다.

소현세자의 병환은 학질에서 시작된다. 인조 23년 4월23일 어의 박군이 소현세자가 학질에 걸린 것을 판정하였다. 4월27일 기록에는 치료 2~3일만에 세자가 죽고 말았다는 기록과 함께 이형익에 대한 질타가 잇따른다. “의관 이형익이 사람됨이 망령되어 괴이하고 허망한 의술로 세자가 오한전(덜덜 떠는 것)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증세 판단 없이 침만 놓았으니 국문하소서”라고 청한다.

소현세자가 걸린 학질은 무서운 병일까? 학질은 조선시대에 아주 흔한 병으로 학질을 앓고 나야 사람이 된다고 할 정도였다. 하루걸이 질병이라고도 하는데 하루걸러 발열과 오한을 반복하는 삼일열 말라리아 증세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치사율은 소아를 제외하면 별로 높지 않았고 자연 치유가 되었다.

치료에 있어서도 정통 치료와는 다른 오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한 전율한 것은 양기가 허약한 것으로 내부의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다. 이럴 때는 동의보감에도 약만 쓰고 침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형익은 자신의 침술만을 내세우면서 원기를 훼손한 것이다.

이형익의 자랑하는 침법은 번침술로 전해진다. 번침은 침을 불에 달구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화침이라고도 불린다. 침을 불에 빨갛게 달군 후 잽싸게 시술한 부위에 꽂았다가 빨리 뽑아주는 치료방법을 말한다.

만약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대로라면 어떻게 독살을 규명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법의학서적인 증수무원록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한의학의 氣라는 본질과 달리 현실적이다. 독살의 검증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은비녀를 이용한다. 은비녀를 조각자라는 약물로 씻고 시체의 목구멍에 넣어 입을 밀봉하고 난 뒤 한참이 지난 후 꺼내 조각자물로 다시 씻는다. 그 색깔이 푸르거나 검으면 독살로 판정한다. 둘째는 백반을 죽은 사람 목구멍에 넣고서 한 두 시간 기다렸다가 백반을 넣어 밥을 삶은 뒤 닭에게 주면 닭이 죽어야 독살로 증명한다.

셋째는 쌀 석되로 밥을 짓고 찰수수 한 되를 베보자기에 담아 쌀밥 위에서 찌고, 달걀을 깨어 흰자를 꺼내어 찰수수 밥에 버무려 쌀밥 위에 올려놓았다가 주먹밥을 만든다. 이것을 시신의 입, 귀, 코, 항문에 붙여막고 끓인 초에 솜을 적셔 시신을 적시면 독기가 찰수수밥에 배어 나온다. 이것이 가장 믿을 만한 독살의 증거라고 적고 있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독약은 무엇이 있을까. 증수무원록에 기록된 독약은 고독과 과실, 금석독약, 서망초독, 비상, 야갈독이 있다. 세자가 7개 구멍에 피를 쏟으면서 죽는 증상에 가장 가까운 독약은 서망초다. 서망초는 목련과에 속한 협엽회향으로 양자강 중하류에서 자란다. 독성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피부병에 개어서 붙이는 약물이다.

소현세자의 죽음 후에도 왕은 세자의 시신상태를 모르는 것으로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CSI인 증수무원록이 힘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 후 더욱 적극적으로 이형익을 비호한다. 심지어는 이형익이 인조 앞에서 거침없는 언행을 하는 바람에 신하들의 지적도 몇차례 받는다.

특히 은밀히 임금에게 말해 형제와 자식들에게 모두 관직을 제수하는가 하면, 궁궐의 저주를 푼다고 임금에게 밤중에 뜸을 뜨는 해프닝을 벌인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면에 정치적인 계산이야 알 수 없지만 돌팔이의 폐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마저 앗아간 것이다. 
 
이상곤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