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1-10-27 10:30
제 목
코털을 뽑는 것이 좋을까, 잘라야 할까?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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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털을 뽑는 것이 좋을까, 잘라야 할까라는 정답을 두고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코털이나 세포 겉의 가는 털(섬모)은 일종의 방풍림과 같다.

예를 들면 동해안에 월송정이나 송도에는 소나무가 멋지게 바닷가에 서 있다. 풍광을 위해 심은 것 같지만 사실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것이다. 코털도 소나무처럼 호흡기의 전면에 서서 보호막 역할을 한다. 바로 기관지와 폐의 보호막이다. 먼지나 꽃가루 같은 이물질이 콧속의 좁은 길을 통과하여 기관지나 폐에 접촉하면 방출을 위해 인체는 엄청난 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이물질은 한번 호흡에 20만개나 된다. 미세한 작은 것은 점액이 접촉하여 제거하지만 다소 큰 것들은 코털이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입을 벌린채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까지 막힘이 없는 큰길로 호흡당 그대로 폐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공기는 콧속의 좁고 구부러진 길을 통해 따뜻해지고 습기가 차게 되어 폐에 도달한다. 코의 점막에는 혈관이 많이 모여 있다.

자율신경 작용으로 혈액의 양을 조절하여 부풀거나 수축하면서 공기의 온도·습도를 조절한다. 코를 후비거나 코털을 뽑거나 해서 코의 점막을 지나치게 자극하면 더욱 부풀어올라 코가 막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은 분명하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코털을 뽑은 자리에 염증이 일어나면 다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코 앞부분을 포함한 이 부위의 염증은 모세혈관에서 쉽게 흡수되어 혈전을 형성하고 혈전에 의해 안정맥이 폐쇄되면 안구가 튀어나오거나 안검부종이 생기고, 심하면 얼굴이 부어올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응급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항상 코주위를 청결히 하고 코털은 손으로 뽑지 말고 자연스럽게 가위로 자르는 것이 좋다.

코털은 온도를 조절하는 작용도 돕는다. 춥고 습기찬 지역에 사는 백인들은 코에 털이 자라서 바람이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흑인들은 빨리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코털이 작다. 이런 사실이 궁금했는데 최근 한의원에 흑인 프로농구선수가 코가 막혀서 내원했다. 코 내부를 살펴보니 코털이 거의 보이지 않아 진실을 확인했다. 2m가 넘는 키여서 누울 베드조차도 없어 에어컨에 연결하여 치료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키 큰 사람이 싱겁다고 침에 대하여 공포심은 대단했지만, 무사히 치료하고 숨쉬는 것도 많이 호전되었다.

동의보감에서도 코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였다. ‘콧속의 털은 항상 잘라(去) 없애야 한다. 그것은 코가 신기(神氣)가 드나드는 문호이기 때문이다.’ 신기라는 것은 마음을 넓게 상징한 표현인데 코털이 마음이 드나드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코가 마음과 관계 있다는 것은 비문(鼻門) 첫장에 코는 마음의 집 신려(神廬)라 정의했다. 상징적이지만 구약성서 시편에 봐도 ‘인생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호흡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담의 탄생 또한 흙으로 만든 사람 모양에 코로 숨을 불어 넣음으로써 삶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은 생명의 출발이 코로부터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의식적인 자아는 잠시 숨을 멈출 수는 있지만 숨을 끊을 수는 없다. 생명은 바로 나의 것이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자아가 통제하는 것이며 이것을 관찰함으로써 진정한 자아, 오래된 나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마음의 존재를 뇌로 파악한다면 뇌는 파충류의 뇌에서 대뇌 변연계로, 다시 변연계에서 신피질로 진화하고 있다. 뇌의 진화가 지층처럼 쌓여서 양적 변화로 질적변화를 수반한다고 규정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

남방불교의 수행법은 신기와 관련한 진실을 분명하게  예시한다. 남방불교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해 기본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게 된다. 관찰한다고 안다는 것을 통해 마음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마음 자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마음이 지층처럼 한층씩 사라지다가 마침내 맨 얼굴을 드러낼때  궁극적 평안에 이른다는 것이다. 코털이 존재하여 신기가 출입하는데 장애가 생기는 극도의 고요가 존재함을 어쩌면 알게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