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2-03-16 10:25
제 목
선조의 여색에 빠진 목소리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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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시대는 사림들이 장악하였다. 유학도 조선 초기와 달리 송나라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이었다. 왕위 계승의 근처에도 가기 힘든 선조가 왕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대부들이다. 사대부의 역할이 커진 만큼 왕권의 시대에서 신권의 시대로 균형추가 묘하게 움직였다. 이런 와중에서 사림들은 선조의 내면세계를 성리학의 이상적인 군주로 키우려고 교육에 나섰다. 이황, 이이, 기대승 등 듣기만 해도 대단한 유학의 거장들이 모두 선조의 경연강사로 나섰다.

성리학의 연구는 도덕성명(道德性命)에 편중되어 국가와 국민의 실제 문제에 대한 연구는 적고, 교조적이며 도덕적인 문제에 치중한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관점은 당연히 의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도덕적 관점에서 사람의 성욕을 절제하거나 억제하는 것을 논의의 중심으로 이끌어냈다. ‘격치여론’을 지은 주진형은 “절욕 양생 사상은 유학의 이욕(理欲)논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정도였다. 한의학의 모든 의학가들은 성(性)과 건강과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해 왔다. ‘좌전’에는 전국시대 명의 의화(    和)가 진후(晉侯)의 병을 논의하면서 “그 병은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절도에 맞지 않고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병이다”라고 진단한다.

선조의 질병에 대한 기록은 여색절제에 대한 말로 시작된다. 선조 6년 1월3일 목소리가 끊어지고 이어지면서 책 읽는 소리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논의한다. “옥음이 정상적이 아닌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어도 오래 끌고 낫지 않으니 입시한 신하로서는 누구나 물러가서 조심합니다.”

이후 여러 차례 목소리에 대한 근심스런 논의가 계속되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모두 자제한다. 이런 가운데 율곡 이이가 처음 입시하자마자 포문을 열었다. 이이의 성격을 두고 실록은 쾌직(快直)하다고 표현한다. 거침없이 직설적이라는 뜻이다.

“소신이 병으로 오래 물러가 있다가 오늘 옥음을 듣건대 매우 통리(通利)하지 않으시니 무슨 까닭으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여색을 경계하는 말을 즐겨듣지 않으신다하니 성의(聖意)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맑지 못한 것이 여색을 삼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책망이 직설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대가 전에 올린 상소에도 그렇게 말하였으나, 사람의 말소리는 원래 같지 않은 것인즉 내 말소리가 본디 그러한데 무슨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답변한다. 이 때 ‘옥색이 자못 언짢아하며’라고 선조의 심기를 실록은 자세히 적고 있다.

지금은 상식이 되었지만 목소리는 성호르몬의 영향이 크다.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남자의 목소리가 굵어지며 저음이 되고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여자의 목소리가 고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지금이야 성호르몬이 신장 곁에 붙은 부신에서 분비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한의학은 부신을 신장의 일부인 명문(命門)이라 규정짓고 목소리와 성호르몬과의 관계를 당연시하며 생리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맞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믿는다. 선조는 즉위를 즈음해서 공부와 정치적 결정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으면 외향적인 사람은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부교감신경이 흥분한다. 선조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부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미주신경 과긴장증이 오는데 발성장해로 쉰 목소리가 생기거나 위장운동장해가 생긴다. 목소리의 이상을 호소한 이후 선조는 위장장애로 위장약을 복용하거나 소화불량증상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것을 실록에서 볼 수 있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신하들이 한의학의 이론적인 부분만 보다가 스트레스를 유발한 자신들의 책임은 망각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목소리를 관장하는 성음문에서 첫구절에 ‘목소리는 신장에서 나온다’로 시작한다. 현대는 자기 표현의 시대다. 말을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도 부지기수다. 교수, 교사, 가수, 성우, 상인에 이르기까지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말로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며 살다보니 성대가 피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대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목이 마르고 건조해져 결국에는 쉰 목소리, 갈라진 목소리로 고생한다.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윤택하고 탄력있게 할까. 동의보감은 좋은 목소리를 내는 법에 이렇게 도움말을 적었다. “말하거나 외우거나 읽을 때 언제나 기해(배꼽 아래 있는 혈 이름) 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양생법을 적었다.

고운 목소리를 내는 약물도 거론하였다. 껍질을 벗긴 살구씨와 졸인 우유, 꿀을 반죽하여 알약을 만들거나 곶감을 물에 담갔다가 늘 먹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흔히 달걀을 먹는데 흰자는 성질이 서늘해서 인후두의 열을 식히고 염증을 없애서 목소리를 좋게 한다고 생리적으로 설명하였다. 노래 부르기 전에 먹는 날달걀도 속설이 아닌 근거있는 정설인 셈이다.


이상곤 원장
서울시 갑산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