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2-03-16 10:27
제 목
어디에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49일'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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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TV의 드라마 ‘49일’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 민족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변은 49라는 숫자에서 간단히 결론이 난다. 49는 7×7로 우리 민족의 사생관을 집약한 것이다. 7은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강원도 아리랑의 노래구절에는 “…칠성당에 아들 딸 낳아달라고…”라는 말이 있다. 삶의 시작이 칠성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애를 낳았을 때도 칠일로 시작하여 한칠, 두칠, 세칠을 보내면서 일곱칠이 지날 때까지는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지금이야 많이 약화됐지만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고유관습 중 하나다. 49일 이전에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죽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으면 관속 바닥에 칠성판을 깐다. 칠성판을 통해서 하늘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북두칠성의 첫째 별인 천추성 쪽으로 머리를 놓고 일곱 번째 별인 요광성쪽으로 다리를 향하게 하여 땅에 묻는다.

상두꾼은 방울을 흔들며 묘지로 인도하는데 하늘의 자손이 땅에 왔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의식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수천년이 되었지만 절간에 칠성당이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관습 중 가장 뿌리 깊은 믿음이 칠성신앙을 반증하는 것이다.
49일은 북두칠성의 정기로 태어난 생명이 칠성의 첫째 별에서 일곱 번째 별을 돌며 우리 생명의 본래면목을 찾아 영생불멸하는 참다운 나를 깨쳐가는 과정이다.

이제까지 이름이 나 인줄 알고 이름에 집착하고 직장이 나 인줄 알고 직장과 직책에 집착하고 육체나 재물이 나 인줄 알았던 이 세상에서의 시대의 사상이나 관념에서의 탈출이다. 지금의 생명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생명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의식절차인 것이다.

하늘과 땅은 우리의 선조가 자신의 동반자, 혹은 거울로서 본받고자 해온 생명의 뿌리다. 천문은 하늘의 무늬로서 로고스요 아르케였다. 하늘의 진리가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기 위하여 천문을 연구한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하늘이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기 위해 천문을 공부한 것이다.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지상의 시간과 온도 변화는 태양의 고도에 의해 일어나고 온도 차이에 의해 바람과 비와 습기와 건조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 파악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북두칠성은 하늘에서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천체 운행의 기준점이다. 옥상에 올라가 북두칠성을 바라보면 국자모양의 손잡이가 반듯하다가 국물을 쏟을 듯 기울어졌다가 다시 쏟아져 내리는 모양으로 변한다.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축으로 돌고 있는 무수한 별들의 운행과 사계절의 질서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축이라는 것은 원점이다. 원점은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원형질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동의보감 양생문에서는 “하늘은 북두칠성을 기틀로 삼고 사람은 마음을 기틀로 삼아 움직인다.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은 모두 북두칠성의 힘으로 돌린다”고 북두칠성의 역할을 중시하였다.

음양과 오행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집행하는 별이 되므로 칠정(七政)이라고도 불린다. 우주에서 북두칠성이 하늘의 모든 운행을 주관한다면 지구 가까이 태양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해, 달,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의 일곱 개의 별들이다.

이것이 일월오행이고 일월이 음양의 대표인 점을 감안하면 바로 음양오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극을 보면 옛날 임금들의 병풍이 일월오봉도인데 바로 우리 민족의 마음의 고향을 그린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북두칠성과의 밀착감은 여러 방식의 상징으로써 나타났다.

윷놀이는 우리 문화의 고유한 풍습이다. 29개의 점은 중앙의 1점과 주변의 28점으로 나누어 28수 별자리를 나타낸다. 28개 점들은 네 방향에 각각 7개 점들로 다시 나뉘는데 이 7의 숫자는 북두칠성을 그린 것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자모의 수도 28자인데 이는 칠성을 4계절에 재배치한 숫자이다. 대금 맨끝에 뚫은 구멍들을 칠성공이라 하는데 이것은 대금의 지공을 북두칠성으로 본다는 뜻이다.

옛날 선조들이 하늘의 천문을 관측하고 살핀 이유는 한가지다. 하늘이 어떻게 생겼고 그곳에 별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하늘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농사를 때맞춰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였다. 인간의 삶은 북두칠성, 혹은 작게는 일월과 오성이 일으킨 변화무쌍한 감각하는 꿈이라는 믿음이다.

한의학적 사유도 마찬가지다. 겨울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고 차가운 북쪽을 상징한다.

1월이 영어로 jannuary인 점도 야누스의 얼굴처럼 생명의 시작과 끝인 것을 내포한 언어다. 북쪽의 대표는 북두칠성이다. 그래서 왔으면 돌아가야 할 원점이 바로 북두칠성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상곤 원장
서울시 갑산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