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한의원
등록일 : 2015-11-02 17:05
제 목
조선왕조와 한의학 순조 – 003
작성자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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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허약하고 피로한 허로(虛勞)증상 지속되자 의관들 대조지황탕, 혼원단 등 처방


여성적 기질 뚜렷
순조에 대한 질병 치료의 특징은 약물 위주였다는 점이다. 처방의 종류도 아주 다양해서 100여 가지나 됐다. 순조에게 허약하고 피로한 허로(虛勞) 증상이 지속되자 의관들은 극단의 처방을 구사한다. 대조지황탕과 혼원단이라는 처방이 그것이다. 대조지황탕은 대조환이나 보천대조환에서 만들어진 처방으로 맥이 약하고 기혈이 쇠약한 것을 치료하는데, 허로한 사람이 성생활을 지나치게 하여 가슴과 손바닥에 번열이 나는데 먹으면 효험이 좋은 약이다. 혼원단은 몸이 몹시 여위고 기침과 가래가 있으면서 귀주(鬼疰)병을 앓는 사람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이 두 처방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건 태반이다. 태반은 임신부의 자궁 안에서 태아와 모체 사이의 영양 공급, 호흡, 배설을 주도하는 조직이다. 고대에는 태반을 인간이 최초로 몸에 걸치는 가장 좋은 옷이라고 여겨 신선의(神仙衣)라고도 했다. 한약재로서의 정식 명칭은 자하거(紫河車)다. 자하거의 자색은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검은색과 붉은색의 혼합이다. 검은 어둠에서 해가 뜨는 붉은 여명의 아침이며,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색깔이다. 본래 자궁은 생명이 시작됐지만, 세상에 나오지 않은 미명의 장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었다.
하(河)와 강(江)은 다르다. 하는 황하 이북의 물길을, 강은 황하 이남의 물길을 뜻한다. 북쪽이 황하의 근원임을 생각하면 뜻은 서로 맞닿아 있다. 거(車)는 자궁에서 생명의 힘을 충분히 준비해 타고 나오는 리무진을 뜻한다. ‘동의보감’에선 배태(胚胎)의 99수가 만족해 타고 나온다고 설명한다.
자하거의 약용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한의학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의 기록은 현실과 신체발부(身體髮膚)에 대한 유학이념 사이의 치열한 괴리를 보여준다. “유구국(오키나와)에서는 부인이 출산하면 반드시 태반을 먹는다.” “팔계(광서성의 만(蠻)족)의 요인은 남자를 생산하면 친족이 모여서 태반을 먹는다”라고 적으면서도 “사람으로서 사람을 먹는다면 유구족이나 요인들 같은 오랑캐와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탄식의 말을 달아놨다.
명대에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이 자하거의 사용을 망설였다면 명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자하거를 천하의 명약으로 사용했다. 청대비방집에 보천하거대조환이라는 처방으로 실질을 살렸다.
자하거의 약효는 대부분 자음(滋陰), 즉 음을 기르는 효능을 첫 번째로 꼽는다. 태반은 생명력을 기르는 텃밭으로 온갖 중요한 물질의 창고가 된다. 인체에서 물과 같은 혈액 모양의 물질이 부족해 잘 달아오르는 것을 음의 부족으로 파악해 음허(陰虛)로 인식하고 그 물질을 보충하는데 자하거 약효의 특징이 있다고 본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기록한 자하거의 치료 효능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주목하는 치료 효과는 남성 성기능 장애와 여성 불임에 대한 효능이다. 입문대조환 처방의 주치(主治)는 더욱 구체적이다. “기혈이 허약하고 음경이 줄어들어 겨우 형태만 있으며 안색이 누렇게 뜨고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라고 성기능 개선을 효능으로 내세웠다.
자하거는 폐결핵과 같은 만성 소모성 질환에도 치료 효능을 발휘한다. 만성기관지 천식과 피로, 해소 등 호흡기도가 약해서 점액이라는 음적인 물질의 분비량이 줄어들면 쉽게 이물질이나 바이러스, 세균에 노출되는 상태를 치료한다.
자하거의 또 다른 치료 효능은 항스트레스 작용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신문(神門)에는 태반이 간질이나 가슴이 뛰는 것, 정신이 없는 것, 말이 많으나 일관성이 없는 것에 혈을 길러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기재했다.
순조는 재위 13년에 웅주산과 인삼석창포차를 복용한다. 웅주산은 가위 눌린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한의학에선 가위눌림을 귀염(鬼魘)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귀신이 압박한다고 본 것이다. 동의보감은 이 증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잠들었을 때는 혼백이 밖으로 나가는데 그 틈을 타서 귀사가 침입하여 정신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꿈을 꾸고 불안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혈기가 부족해서라고 보았다. 혈기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손상받는다. 가위눌림은 현대의학에서 수면마비라고 하는데, 일종의 수면장애로 본다. 잠자고 있는 동안 긴장이 풀린 근육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만 깨어나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웅주산의 구성 약물은 우황, 웅황, 주사 등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물이다. 순조가 받은 심리적 압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약재들이다. 이 시기에 처방된 약물들엔 대부분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심(心), 지(志), 신(神) 등의 글자가 들어가 있다.
가미영신환, 천왕보심단, 청심온담탕, 주사안신환 등의 처방을 잇따라 달여 올렸다.
이상곤 원장·갑산한의원